[이규민 칼럼]연못 속의 악어를 보라

  • 입력 2007년 5월 28일 19시 14분


언제부턴가 같은 국적을 갖고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거짓과 위선의 광풍에 휘둘려서인가. 지금 이 사회는 옳고 그름, 진실과 허위, 선과 악의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는 혼돈 상태에 빠진 모습이다. 앞날의 생존을 위해 단단히 경계해야 할 대상과 믿고 힘을 빌릴 만한 대상을 구분 못하는 정신적 색맹(色盲) 증세를 보면 과연 이 나라가 다음 세대까지 온전할지 걱정스럽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에 대한 얘기다.

러시아, 일본, 베트남, 인도 같은 중국의 주변국들과 서방 제국은 오래전부터 중국을 심각하게 경계해 왔다. 인도의 네루 총리 같은 이는 이미 1960년대에 ‘중국은 아시아라는 연못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 악어와 같은 존재’라고 경고한 바도 있다. 그런데 막상 중국에 의해 치욕과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는, 그리고 지금도 온갖 성가심을 당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유난히 중국에 대해 태평하고 관대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골든로즈호를 침몰시켜 우리 선원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의 가해자인 중국 측 행태와 피해자인 한국 측 반응이 그 가까운 사례다. 우리 선박을 들이받고 구조작업 대신 뺑소니를 친 중국 선원들의 행동도 악랄한 범죄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중국 당국의 반응이다. 중국 정부의 입이라고 할 수 있는 관영 CCTV는 ‘골든로즈호가 구난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인명 피해가 났다’는 염치없는 말로 이 나라의 진면목을 보여 줬다. ‘내가 실수로 총을 쐈지만 방탄조끼를 입지 않아 죽은 것은 당신 책임’이라는 식이다.

고약한 이웃에 관대한 ‘정신적 색맹’

피해국인 한국에서의 움직임은 어떠했는가. 불과 몇 년 전 미군 병사의 과실로 두 명의 여학생이 희생됐을 때 이들을 살려내라고 악을 써 대며 미국을 규탄하던, 그리하여 세계 각국의 TV 화면에 추한 꼴을 비치고 전 세계 시민들에게 부끄러운 기억을 남겼던 그 많은 촛불시위꾼은 어디로 갔는가. 골든로즈호 사건 후 언론만 며칠 요란하다가 잠잠해졌을 뿐 시위대의 단골 손님인 개량한복의 사나이들은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고, 중국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중국이 이런 자세이고 또 한국의 반응이 이 모양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를 능멸해 온 것은 유구한 역사적 전통이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조선의 왕이 일본 왕에게 절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치일 터지만 과거 우리의 어느 임금은 중국 황제에게 하루에 세 번 절하는 것을 무슨 미덕처럼 기록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존경한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도 중국의 마오쩌둥을 존경한다고 한 것은 괜찮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대한제국 말기 윤치호는 상하이 유학 시절 ‘우리가 의탁해야 할 나라는 영국이나 미국이어야 한다. 청나라는 치사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라고 일기에 썼다. 중국은 그때와 달라졌는가. 몇 년 전 탈북자를 연행하겠다고 공안이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무단 침입하고 우리 외교관들과 기자들을 폭행까지 했을 때 한국은 진정 주권국가였는가. 같은 일이 워싱턴에서 벌어졌다면 서울의 미대사관은 반미 시위대에 박살이 났을 것이다. 중국은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한국 국민이 대들지 못할 것이라는 과거 수백 년간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중국에 대해 너그러운 이 정권이 들어선 후 한국을 우습게 보는 악습은 증세가 더욱 심해지는 느낌이다.

민족의 운명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

이제 중국은 문화대국, 도덕대국은 아니지만 경제대국이요 군사대국이 됐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청교도 정신, 기독교 정신이 몸에 밴 국민도 아니고, 국제 여론을 무서워하는 국가도 아니다. 이런 나라가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을 때 그 옆의 한국을 한번 상상해 보자. 제2의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없으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 중국 공안이 한국대사관에 침입하여 외교관을 폭행하고 서해에서 한국 배가 중국 선박에 받혀 침몰당하는 일은 더 자주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중국제 불량식품은 이 나라 시장에서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이 시대 우리가 그런 미래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민족의 운명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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