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창]팬 서비스에 눈 돌리는 국내야구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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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인천 문학구장에선 프로야구 26년 사상 초유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헐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왕년의 거포 이만수(49) SK 수석코치가 5회가 끝나고 클리닝 타임 때 인조 엉덩이가 붙은 우스꽝스러운 팬티를 입고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았다.

이 코치는 지난달 29일 “앞으로 홈 10경기 안에 만원 관중이 입장하면 팬티만 걸친 채 경기장을 돌겠다”고 말했다. 26일은 그가 정한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문학구장은 3만400명의 관중으로 꽉 찼고 뒤늦게 도착한 4000여 명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01년 겨울 개장한 문학구장이 정규 시즌에 만원 관중을 기록한 것은 2005년 4월 5일 홈 개막전 한 번뿐이었다.

이 코치는 ‘스트리킹’을 마친 뒤 상기된 얼굴로 “눈물까지 흘리며 만류하는 가족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다. 나도 이 나이에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도 프로야구 흥행에 조그만 보탬이라도 됐다면 오케이”라며 “팬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고 활짝 웃었다.

9년간의 메이저리그 코치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이 코치는 “처음에 썰렁한 관중석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팬티 질주’는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온 팬 서비스였다.

야구장에 관중이 돌아오고 있다. 28일 현재 157만2656명이 야구장을 찾아 작년 같은 경기 수에 비해 35%나 늘었다. 이 추세면 1996년 이후 11년 만의 400만 관중은 물론, 1995년 유일했던 500만 관중 돌파도 가능해 보인다.

사실 그동안 국내 프로야구는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팬 서비스는 부족했다. 미국이나 일본에 코치 연수를 다녀온 지도자들은 선진 야구 기술만 전수하려 했지 ‘팬과 함께 뛰는 야구’는 뒷전이었다.

문학구장에 2년여 만에 만원 관중이 몰린 것은 중년 아저씨의 알몸을 감상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이 코치의 순수한 마음을 읽은 팬들이 그동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연 것이다.

야구만을 정말 잘하는 ‘야구 천재’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도 좋지만 48m 높이의 곤돌라에서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고, 괴상한 가면을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는 ‘우주인’ 신조 쓰요시(전 니혼햄 파이터스)도 필요한 세상이다.

전창 스포츠레저부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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