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플러스] 고령화 시대 노인 목소리 대변하는 은퇴자협회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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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 주 뉴브런즈윅에 사는 교포 최봉선(68) 씨는 올해 초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비의 상당 부분은 자신이 가입해 둔 건강보험에서 지원받지만 본인 부담액이 매주 180달러나 됐다. 최 씨가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자 주변 사람들은 미국은퇴자협회(AARP)에 가입해 이 협회 회원들에게 할인 혜택이 있는 건강보험으로 바꾸라고 충고했다. 최 씨는 현재 똑같은 치료를 받으면서 월 15달러 정도만 내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사는 루빈 브라트(66) 씨는 은퇴 이후 모빌하우스(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는 게 꿈이었다.

그는 65세에 은퇴하자마자 AARP 회원에게 주어지는 할인 혜택을 받아 캠핑카를 5% 싸게 구입했다. 그는 여행 중 가끔 여행자 호텔에서 묵으면 대다수 호텔이 AARP 회원에게 적용하는 10% 할인 혜택을 받는다.

고령화와 은퇴 이후의 삶이 지구촌의 관심사가 되면서 미국 영국 덴마크 등 선진국에선 은퇴자들의 권익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은퇴자협회가 주목받고 있다. 은퇴자협회는 일종의 권익단체이면서 시민단체인 비정부기구(NGO)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집단의 힘으로 보험 가입, 물품 구매 등에서 유리한 혜택을 이끌어내고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정년 연장 등 노인의 권익과 관련된 각종 법률을 제정하도록 하거나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은퇴자협회는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봉사로 사회적 위상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은퇴자협회는 회원 수가 적고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해 협회의 운영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은퇴자협회=50세 이상 미국인이면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현재 회원의 3분의 1은 현업 재직자다. 이 단체 회원이 되면 건강보험 가입권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물품 구매와 소비활동에서 할인 혜택을 누리고 노인의 삶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 협회 연간 예산의 40%는 각 기업이 AARP 명칭을 사용하고 내는 로열티 및 서비스제공 회사의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전체 예산 가운데 회수 수입은 26%, 정기간행물 판매 및 광고수입이 11%, 투자 수익과 각종 프로그램 운영 수익이 7%씩이다.

▽한국은퇴자협회=2001년 말 뉴욕한인회장을 하던 재미 사업가 주명룡(60) 씨가 귀국해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빌딩의 200평을 임대해 사무실을 열었다. 초기 상근 직원은 15명이었다. 주 씨는 미국의 사례를 참조할 때 한국에서도 2년 정도만 지나면 회원의 회비로만 협회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회원은 생각만큼 늘어나지 않았고 더구나 유료 회원은 거의 없었다. 이 단체는 2004년 초에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작은 사무실로 옮겼다. 지난해 이 단체의 연간 지출은 2억여 원. 이 중 회비 수입은 300만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이 회장과 임원들의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오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해 고령층 문제 모의재판 개최, 연금 문제 포럼 개최, 정년 연장에 대한 정책 건의, 심포지엄 개최 등 많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재정이 갈수록 어려워져 올해 초 상근 직원들이 박봉을 견디다 못해 떠나는 바람에 현재 직원 3명만이 상근하고 있다.

이 단체는 처음부터 정부 지원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순수성이 훼손되고 자칫 어용단체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은퇴자협회의 고전 이유=이 협회 직원 김선경(40) 씨는 한국은퇴자협회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은퇴자 세대의 NGO 마인드 부족을 들었다. 한국의 50대 이상 세대는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고 NGO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 씨는 “많은 회원이 협회로부터 무엇인가 도움 받기를 원할 뿐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이나 지식 등을 나누겠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협회는 만성적인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사업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은퇴자협회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많은 정책이 우리 사회의 은퇴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어서 은퇴자들이 적극적으로 협회 활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락(67·서울 성동구 행당동) 씨는 2년 전 한국은퇴자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해 현재 자동이체 방식으로 월 5000원의 회비를 내고 있다. 김 씨는 회비를 내는 이유에 대해 “다른 NGO와는 달리 협회가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원들이 최소한의 기여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은퇴자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지를 협회 참여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힘을 결집하는 일이 어렵게 되고 이는 은퇴자 전체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우 사회복지 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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