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다시 보는 국수전 명승부… 쌍십절의 혁명

  • 입력 2007년 5월 30일 03시 02분


1990년 10월 10일 15세의 이창호가 스승을 꺾고 국수에 오른 것을 두고 “쌍십절의 혁명”이라고 불렀다. 조훈현 시대 15년이 저물고 이창호 시대를 여는 순간이었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에 이은 4세대 국수의 탄생.

국내 바둑계 일인자 계보를 말하다 보면 늘 나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홀쭉이와 뚱뚱이.’ 코미디언 얘기가 아니다. 체형으로 보면 조남철(홀쭉이) 김인(뚱뚱이) 조훈현(홀쭉이) 이창호(뚱뚱이) 순인 데다 기풍도 몸집과 비슷하게 실리(홀쭉)와 두터움(뚱뚱)으로 교차하고 있기에 나돌기 시작한 설(說)이다. 이 순서대로라면 이창호 이후에는 다시 홀쭉이 시대가 이어진다는 얘기인데 현재 이세돌 9단이 유력하다는 사실을 보면 그냥 넘길 소리는 아닌 듯싶다.

백 82로 붙여 나가자 주객이 전도됐다. 형세가 여의치 않은 백은 무리하게 중앙 싸움을 도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흑은 맞받아 주는 시늉만 하다 슬슬 게걸음을 하면서 실속을 차렸으면 무난했다. 차제에 칼을 뽑았다가 보기 좋게 ‘십면매복’에 걸려들었다.

흑 83부터 89까지 안에서 비비고 사는 게 비참하다. 흑 83은 참고도처럼 흑 1로 젖혀 강하게 싸우고 싶지만 백 2 이하 10까지 뚫리는 수가 있어 파탄이다. 도처에 약점이 있어 흑은 A에 막을 수 없다.

백은 82부터 86까지 못 이기는 척 머리를 내밀며 자연스레 좌변과 도킹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백 90도 선수여서 92까지 우변 흑진이 초토화됐다.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 제자는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바둑판만 내려다보았고 스승은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천장만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그 누구도 말이 없었다. 227수 끝, 백 6집 반 승.

해설=김승준 9단·글=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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