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5월 19일 광주 무등산 연설. “대세를 거역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뉴스가 됐지만 당시 기자들이 미처 전달하지 못한 대목이 있다. 노란색 잠바를 입은 노 대통령이 “저는 국민의 정부를 계승한 대통령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역사가 뒤돌아 가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청중은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들려오는 한 청중의 목소리. “열차도 통과했습니다.” 뉴스에는 잡히지 않은 말이다.
9일 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를 비판하면서 혼잣말처럼 이렇게 되뇐다. “평생 정치했는데 이제 싫증날 때도 되지 않았나.” 19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섰다가 선거 1개월 전에 갑자기 타계한 부친(조병옥 박사)에 대한 기억도 배어 있는 ‘안타까움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DJ는 동교동으로 찾아간 열린우리당 정대철 고문에게 “1950년대 신익희, 장면, 정일형, 조병옥 박사가 민주당을 창당한 이래 민주개혁세력이 이렇게까지 사분오열되긴 처음”이라고 질타한다. ‘어떻게 대(代)를 이어온 집안인데…. 내 생전에는 그 꼴 못 본다’는 말이다.
노 대통령은 그런 DJ의 집념을 읽었을 것이다. 그 집념이 결국엔 지역주의의 비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노란색 잠바를 입고 대세를 따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노 대통령은 “열차도 통과했습니다”라는 말이 던지는 의미도 알았을 것이다. 무등산 연설 이틀 전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시험열차는 햇볕정책의 상징이다. 그 열차는 남북만 오간 것이 아니다. DJ의 집념과 호남 민심 사이도 달렸다. DJ와 호남은 대선을 앞두고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노 대통령은 무등산에 오르기 전날 5·18기념식사에서 지역주의의 부활 조짐을 그 어느 때보다 경계했다. “여러분이 제게 대통령을 맡긴 것은 제가 일관되게 지역주의에 맞서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제게 더 남은 힘이 있는 것 같지 않다”며 허탈해했다.
1995년 부산시장 출마 때도 그랬다. “부산시민들이 민주당을 탈당하면 뽑아 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지역주의에 영합하는 일입니다.” 선거 초반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였다. 그러나 곧 역풍(逆風)을 맞는다. 정계 복귀를 결심한 DJ가 ‘지역등권론(等權論)’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DJ는 영호남 차별을 ‘흑백 인종 차별’에 비유하며 등권론을 부르짖었다. 노무현은 분노했다. 지금도 청와대 홈페이지의 ‘노무현이 걸어온 길’에는 당시를 ‘지역주의 역풍으로 놓친 부산시장 선거’라고 적어 놓고 있다.
노무현은 1997년 ‘최초의 정권 교체를 위한 선택’이라며 DJ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했다. 그건 그래도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은? DJ 정권과 자칭 그 ‘승계 정권’까지 끝나 가는 지금은? 이젠 햇볕정책을 위해서라고 할 것인가? 지역주의 거부를 존재 이유로 내세워 온 노무현 정치는 이제 죽었다. 또 지역주의를 입에 담는다면 노무현은 위선자다. 아니 기회주의자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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