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공단]연봉 1달러의 美 공직자

  • 입력 2007년 6월 7일 03시 00분


연구 분야가 동아시아 안보와 국제 관계인 까닭에 지난 20여 년간 미국 공직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물론 토론도 많이 했다. 이렇게 사귄 공직자들 중에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 때문에 미국이 오늘날까지 좋은 나라로 유지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명감을 가진 진실한 공직자 말이다.

통신 분야에서 획기적인 신기술을 개발해 30대 초반에 억만장자가 된 S 씨는 이제 더는 돈이 필요 없었다. 은퇴한 뒤 골프나 하고 여행 다니고 예술품을 수집하며 남은 인생을 즐겨도 될 만큼 호사스러운 처지였다.

그러나 은퇴 후 생활은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이윽고 공직생활에 뛰어들었다. 연봉은 1달러만 받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 그는 지금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외교적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일을 담당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T 씨도 비슷하다. 뉴욕 월가 증시에서 큰돈을 벌었으나 성취감보다 허탈감을 느끼자 대학 시절 은사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물었다.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워싱턴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은사는 제자의 얘기를 듣고 반색하면서 핵 확산 문제의 비중이 커지니 전공을 살려 일해 보라고 그를 정부에 추천했다.

갑부들 무보수로 나랏일 헌신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던 T 씨는 즉각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는 자신의 녹슨 머리를 맑게 하고 핵과 관련된 최근 상황을 공부하기 위해 학자와 연구자를 사무실로 부지런히 초청하고 있다. 나도 그의 초청을 받아 북한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미국 관료 사회의 경우 부(副)장관급 이상이 아니면 업무상 사교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받지 못한다.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가 브리핑을 하기 위해 방문한, 즉 손님인 내게 점심을 차려 놓은 뒤 비용을 내라고 할 정도다.

T 씨는 자신의 돈으로 백악관 외부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사다 놓고 나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간소한 점심입니다. 먹긴 먹어야 하고 시간은 짧아 샌드위치를 사 왔으니 양해해 주세요”라며 웃었다. 궁금해서 “(내게) 점심 값은 안 받습니까?”라고 물었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놓던 그의 비서는 “우리 부장님이 사신 거예요”라고 알려줬다. 나는 그를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전화나 e메일로 뭘 물어 오면 만사를 제쳐 놓고 그를 도와준다.

미 국무부 반(反)테러리즘 정책실의 A 씨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2년 전부터 근무하고 있는 재원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인간성도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다. 만나면 만날수록 장점이 드러나는 사람이라 그를 만나게 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A 씨의 상관이 국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한 뒤 내가 물었다. “같이 일해 보자며 널 국무부에 데리고 온 그가 사임했으니 너도 자리를 바꾸든가, 아니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침묵이 잠시 흐른 뒤 A 씨는 차분히 대답했다. “같이 국무부에서 일을 시작한 동기생들은 모두 더 매력적인 자리로 옮겼지만 저는 그대로 있을 작정입니다. 하루 이틀에 테러리즘이 종결되지는 않을 것이고 한자리에서 꾸준히 일을 해야 뭐든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승진이 되든 안 되든 이 일을 적어도 3년 정도는 더할 생각입니다.” 아름다운 외모에 의지와 사명감까지 갖춘 젊은 공직자 덕에 미국은 대통령이 좀 모자라도 국가 운영이 잘되나 보다.

한국 부자들 중 그런 사람은…

위의 사례와는 좀 다를지 몰라도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한국 출신 공직자도 많다. 이들을 보호하고, 한국을 위해 계속 봉사하도록 돕기 위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

다만, 한국의 부자들 가운데 국가에 대한 봉사를 위해 월급으로 단돈 1000원만 받겠다며 선뜻 나선 사례는 있는지…. 안타깝게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공직생활을 빙자해서 돈을 벌려다 패가망신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 봤지만….

오공단 미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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