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재천]‘기자실 대못질’ 누굴 위해서인가

  • 입력 2007년 6월 11일 03시 04분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이 날이 갈수록 가관(可觀)이다.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내세워 정부 부처별 브리핑 룸을 대폭 축소해 세종로, 과천, 대전 정부청사 세 곳으로 통폐합한다는 계획도 모자라 대통령은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언론이 계속 이를 비판하면 나머지 기사 송고실도 없애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가 하면 8일 원광대 특강에서는 “다음 정권 넘어가면 기자실이 되살아날 것 같아 내가 확실하게 대못질해 버리고 넘겨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너무나 치졸한 정책홍보 점수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상은 말할 것도 없이 비뚤어진 언론관에서 비롯됐다. 집권 이후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곳곳에서 언론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이 일관성 있게 드러난다. 그 같은 언론관이 참여정부 내내 밖으로는 편 가르기 식 언론대책으로 언론계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고, 안으로는 정부 부처로 하여금 언론과의 전쟁을 불사하게 만들었다. 이제 대통령의 독선은 정부에 대한 취재의 자유를 봉쇄하는 언론통제정책으로 치닫고 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정책홍보 점수제’이다. 정부 업무평가위원회가 매년 부처의 업무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정책홍보관리 평가는 2006년도의 경우 7개 부문, 20개 항목, 41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됐다(동아일보 6월 7일자 보도).

항목별 배점표를 보면 부처는 높은 평가점수를 받기 위해 그야말로 전 방위 홍보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 보도에 신속하게 대응할수록, 정정 반론보도나 기고를 통해 언론보도에 직접 대응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41개 세부항목별 평가 배점표는 참여정부의 언론대책이 얼마나 졸렬한지를 잘 보여 준다. 민주정부의 언론 정책이 이보다 더 치졸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너무나 확고한 취재원 봉쇄 정책과 그물망보다 더 촘촘하게 짜인 정책 홍보관리 평가 시스템은 언론에 대한 견제 효과를 상승시켜 정부라는 취재원에 대한 언론의 접근을 봉쇄해 버림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국정홍보처는 외국의 기자실 운영 실태를 조사한 자료의 공개 청구를 거부했다고 한다. 기자실 통폐합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재외공관을 통해 수집한 각 나라의 기자실 운영 실태를 조사한 자료가 외교통상부의 ‘대외비’로 분류된 문건이고, 공개할 경우 외교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소가 웃을’ 해명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 앞으로 정부는 기자의 접근을 되도록 회피할 뿐 아니라 알맹이 없는 브리핑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할 조짐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국책연구소나 공기업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특정 신문과 인터뷰한 경위를 파악하려 하고 기자와의 통화 내용을 추적하는 상황에서 자살행위가 아닌 한 누가 진실을 말하려 하겠는가. 민주주의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백일하에 벌어지고 있다.

취재 막으면서 기사 질 높이라니

대통령은 “언론 자유 못지않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는 언론의 수준과 기사의 품질”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취재원에 대한 접근을 봉쇄하면서 어떻게 질 좋고 수준 높은 기사를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국정홍보처는 국가가 언론에 개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갈등이 심화돼 언론과의 적대적인 관계 때문에 정부가 불행해졌던 지난날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유재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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