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 때문이다. 로스쿨의 졸업 정원을 제한하고 졸업생 대부분이 변호사가 되도록 하면 로스쿨 입학시험이 사실상 사법시험처럼 어려워지는 ‘로스쿨 입시 광풍(狂風)’이 불 것이다. 졸업 정원을 확대하고 졸업생 대부분이 변호사가 되도록 하면 자격 미달 변호사가 봇물 터지듯 나오게 될 것이다. 졸업 정원을 확대하고 정원제 사법시험을 존치하면 ‘사법시험 광풍’은 여전한 채 로스쿨 자체가 시험 준비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 세 가능성을 어떻게 조절하는가가 관건인데 그것이 쉽지 않다.
로스쿨은 원래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로 미국 외의 국가론 캐나다가 영국식 법학교육을 가미한 로스쿨을 운영할 뿐이다. 최근 일본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지만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미국에 로스쿨이 대학원급 교육으로 완전히 정착한 것도 제2차 세계대전 후이니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미국이 처음부터 대학원급 법률 교육을 했던 것도 아니다.
미국식 로스쿨 장단점 고려를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원래는 변호사 사무실 수습을 통해 변호사가 됐다. 그러다가 변호사가 수업료를 받고 법률을 가르치는 보습학원이 생겨났다. 1773년 태핑 리브라는 코네티컷 주의 젊은 변호사가 리치필드라는 작은 마을에 2층집을 지은 후 로스쿨 간판을 걸고 나중에 부통령이 된 자기 처남 에런 버에게 법률을 가르친 것이 로스쿨의 기원이라는 얘기도 있다. 대학이 법률 교육에 나서게 된 것은 1817년 하버드대에 로스쿨이 세워진 후부터다.
1870년에 하버드 로스쿨의 학장이 된 크리스토프 랭들은 25년 동안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추구했다. 하나는 로스쿨이 대학원급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판례를 이용해 질의응답 케이스를 경험하는 메서드(method)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랭들 학장과 후임 학장 제임스 에임스 교수의 노력에 힘입어 하버드는 법률교육의 전범(典範)을 수립했다. 랭들과 에임스가 배출한 졸업생들이 다른 대학 교수가 됨에 따라 하버드식 법률 교육은 미국 전역의 대학에 전파됐다. 1921년 미국 변호사협회는 최소한 학부 2년을 이수한 자에게 입학 자격을 주고, 수업 연한을 3년으로 한 로스쿨만 인증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하버드 로스쿨 방식을 표준으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아예 대학을 졸업한 사람만 로스쿨에 입학하게 돼 오늘날의 전문대학원 로스쿨이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 미국의 로스쿨을 방문하면 그 규모와 시설, 교수진에 압도되고 만다. 그러나 미국의 법률 교육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랭들의 업적인 질의응답 교육은 갈수록 잘 이용되지 않는 추세다. 연구논문 발표와 컨설팅에 바쁜 교수들이 정작 학생 교육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학생들도 로스쿨을 변호사 자격을 따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거쳐 가는 관문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명문 로스쿨을 졸업하거나 재학 중 탁월한 성적을 올리지 않는 한 변호사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도 쉽지가 않은 것이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다.
‘입시 광풍’ 등 대비책 마련해야
우리는 무슨 문제만 있으면 남의 제도를 들여와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의 제도를 베껴 오는 데에는 세심한 고려와 준비가 필요한데 그것을 가벼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식 로스쿨이 장점이 많은 교육 제도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 온 제도라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섣불리 도입했다가 큰 시행착오를 겪기 쉽다는 말이다. 정부는 앞서 말한 세 개의 ‘광풍’을 어떻게 조절할지에 대한 복안도 없이 로스쿨을 추진하는 것 같고 대학은 건물을 크게 짓고 교수를 많이 채용하면 로스쿨이 되는 줄로 아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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