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가 말한 ‘이전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까지를 지칭하는 것인지 몰라도 처음 듣는 얘기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관권(官權)선거 및 선심공약 시비는 있었지만 정부가 야당 대선 예비후보들의 공약, 그것도 당내 경선조차 두 달 이상 남은 상태에서의 공약을 ‘분석하고 검토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선거 중립 의무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총리도 그가 처음이다.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한 총리는 밝혀야 한다. 선거법 위반 시비를 떠나 이전 정권에서 대선을 관리했던 현승종(노태우 정부), 고건(김영삼 정부), 김석수(김대중 정부) 총리의 명예와 직결되는 문제다.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현 정부의 국무총리가 관권선거 냄새를 풍겨서도 안 될 일이다.
이번에 한 총리는 기자실 통폐합에 대해서도 ‘당위론(當爲論)’을 폈지만, 2년 전 국무조정실장 때만 해도 기자실에 가장 자주 들른 고위 공무원 중의 한 사람이다. 한 총리의 행동 준거는 오로지 노 대통령 따라 하기인가.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본보 기자에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국무회의에서 기자실 통폐합이나 처리하고 대통령의 ‘쪽 팔린다’는 막말조차도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옹호한 한 총리는 바로 이 시대 관료들의 모습”이라며 혀를 찼다.
최인기 민주당 부대표는 요즘 국무회의를 왕조 때의 어전회의만도 못하다고 했거니와, 최고위 관료들이 이도(吏道·관리의 도리)와는 거리가 먼 보신(保身)에만 여념이 없어서야 정부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선거법상 공무원의 중립 의무는 위헌이 아니다”고 소신 발언을 한 김성호 법무장관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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