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유혁준]실내악의 잠을 깨우자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르 몽드 드 라 뮈지크’를 비롯한 유럽 10대 음악전문지가 2006년 오케스트라 랭킹을 발표했다. 베를린 필을 누르고 1위 빈 필 다음 자리에 오른 것은 러시아 출신의 거장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이 오케스트라의 수석연주자로 구성된 현악 사중주단이 얼마 전 내한공연을 했다.

현악 사중주는 교향곡보다 어려운 장르다. 작곡가는 창작의 괴로움 못지않은 커다란 매력을 이기지 못해 사중주를 쓴다고 한다. 하이든이 시작한 이 고된 작업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화려하게 꽃피웠다. 20세기에는 쇼스타코비치가 전 생애를 바쳐 현악 사중주에 매진했다. 훌륭하게 연주되는 현악 사중주는 듣는 이의 영혼을 울린다.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사중주단이 들려준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는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작곡가의 처절한 기상이 그려진 명연이었다. 객석에는 숨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진지한 기운이 흘렀다. 하지만 드넓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1층 객석조차 채우지 못한 황량함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온 4명의 음악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화려한 오페라와 요란한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에 자주 얼굴을 보이던 명사들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1606년 세워진 미라벨 궁전에서는 매일 밤 음악회가 열린다. 프로그램은 1년 내내 현악 사중주 같은 실내악으로만 채워진다. 잘츠부르크에 갈 때마다 어김없이 들르는 미라벨 궁전의 연주회는 때로 자리가 없어 입석으로 봐야 할 만큼 호응이 뜨겁다. 이 같은 현상은 빈의 무지크페라인 브람스잘, 프라하의 루돌피눔 수크 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필하모니아 말리 홀 등 유럽 대부분 도시의 연주회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솔로 연주를 해야만 성공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클래식 음악계에 던진 일침이다. 언제부턴가 국내 음악인들의 가장 이상적인 꿈은 오케스트라나 실내악단의 단원이 아니라 독주자로 성공해 교수가 되는 것으로 굳어졌다. 음악 교육도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함께 앙상블을 만드는 실내악보다는 일대일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레슨이 가장 중요하다. 단독 실기시험이 학생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적 척도로 작용한다.

독주 콩쿠르는 부지기수로 널려 있지만 권위 있는 실내악 경연은 가뭄에 콩 나듯 열린다. 남을 배려하는 인간미 넘치는 품성을 기르는 데 좋은 실내악은 콩쿠르에 목을 맨 음악도에게는 안중에도 없다. 이 같은 잘못된 교육의 결과는 기성 연주자 현황에 그대로 나타난다. 세계적인 독주자는 많이 배출했지만 이에 상응하는 전문 현악 사중주단이나 피아노 트리오,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전무하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실내악단 단원들은 생계를 위한 레슨에 시간을 빼앗겨 정교하고 치밀한 앙상블을 만들기 어렵다. 또한 전국에 산재한 천편일률적인 규모의 공연장은 실내악을 즐기기엔 너무 넓다. 청중이 자연히 다른 장르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음악학자 만디체프스키는 “깊은 내면에서 창작하는 브람스와 같은 인물에게는 실내악이 가장 어울린다”고 했다.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하는 실내악은 모든 음악의 기초와 같다. 한국의 오케스트라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도 실내악단이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 개인의 기량이 세계적인 악단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앙상블 훈련을 애초부터 게을리 한 탓이다.

연주가의 존재 이유는 청중이다. 사색하며 들어야 제 맛이 나는 실내악 콘서트에 청중이 붐빌 때,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탄생도 가능해질 것이다. 6월의 이른 더위를 씻어 줄 청명한 실내악 한 곡을 권한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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