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병훈]내신 갈등, 교육발전協은 어디 있나

  • 입력 2007년 6월 21일 03시 01분


우리는 왜 항상 이 모양일까. 정말 희망은 없는 것일까. 대학입시에서 내신을 어느 정도 비중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언필칭 다들 ‘중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교육 경쟁력을 높이며 인재를 육성하자’고 한다. 그러나 논의 과정은 참으로 비교육적이다. 학생들의 장래를 염려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을 텐데 생각이 어쩌면 이렇게 서로 다른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한쪽에서는 내신 위주 입시를 평균학력이 높은 학교와 강남지역 일부 학교 출신이 손해 보게 만들 정치적 발상으로 규정한다. 이들 눈에는 사교육 과열, 교육 양극화 등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는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그저 이데올로기에 눈먼 일부 맹목주의자의 계교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손뼉도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던가. 다른 쪽에서는 고등학교 내신 부풀리기를 못 믿겠다고 손사래를 치는 일부 대학의 하소연에 대해 공교육 정상화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부도덕한 이기주의의 소치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린다. 수능과 내신의 등급이 일치하지 않아, 심지어 내신 1등급 학생이 수능 7등급인 경우도 생기는 엄연한 현실에 애써 눈감으면서 어떻게 문제를 풀자는 것인가.

정부-대학 간 협의 절실한데

이것은 총만 안 들었지 전쟁이나 다름없다. 아니 어린 학생을 볼모로 벌이는 싸움이니 어찌 보면 전쟁보다 더 질이 나쁘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면서 상대방의 약점에 대해서는 무섭게 파고든다.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면 보이는 것인데도 굳이 외면한 채 자기 주장만 되풀이한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한마디로 무지와 아집의 종합판이다.

한번 되돌아보자. 말도 많은 올해 입시개혁안이지만 이것은 지금부터 4년 전인 2004년 10월 만들어졌다. 수능 비중을 낮추고 내신 비중을 높이는 내용이 핵심인데 당시 언론에서도 비교적 후한 평가를 내렸던 개혁안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입시개혁안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교육발전협의회’라는 것이 출범했다는 사실이다. 대학과 고교의 대표를 주축으로 학부모 시민사회 언론,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 인사가 함께 참여하여 ‘입시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불행히도 이 협의회는 그동안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고교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져 버린 셈이다.

그동안 우리는 대입 시험이나 고교 교육과정의 당사자인 대학과 고교가 서로 협의하는 기회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대학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 데만 신경을 집중할 뿐 고교 교육과정의 내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면 고등학교는 대학입시 성공 비율에만 치중하여 내신 부풀리기를 서슴지 않는 비도덕적 태도를 보여 왔다. 때문에 조정 기관을 마련한 것은 마땅한 조치였다.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 위해 양자가 자리를 같이 하고 숙의하는 과정이 절대 필요했다.

예컨대 몇몇 일류 대학이 논술을 강화하고 내신 실질 반영 비중을 급격히 높이려 시도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 해도 교육발전협의회에서 고교가 실현성 문제를 걸고 반대하며 학부모나 언론 등 다른 참여자를 설득할 수 있다. 요구의 타당성에 따라 형성된 대세는 협의회라는 제도로 무리한 주장을 견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적 협의 방식 마련이 시급하다. 그러면 언론과 국민이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정책 일관성 유지가 최선

어떤 입시정책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바탕 위에서 정책적 일관성을 갖추는 방향이 최선이다. 장관이 바뀐다고 정책도 따라 바뀌고, 정권에 따라 입시정책이 덩달아 춤을 추는 부조리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진짜 어머니라면 자식이 죽어가는 판에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며 자존심은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한발 물러서는 것이 어찌 그리 대수란 말인가. 교육발전협의회 같은 국민적 협의기구를 되살려 함께 이 난관을 헤쳐 나가자.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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