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21일자(A2면)에 보도한 ‘청, 노 대통령-언론인 토론회 시간 변경 요구’ 기사에 대한 한국언론재단의 해명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재단은 22일 보도자료를 내 “청와대가 토론회 중계방송을 앞당겨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고 KBS가 총대를 멨다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재단 실무자들은 토론회 시간이 바뀐 것에 대해 “KBS 편성본부 측에서 ‘오후 10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토론회가 미리 고지돼 불가능하며 오후 6시 30분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전달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토론회 주선을 위해 직접 언론인과 청와대를 접촉했던 정남기 재단 이사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20일 오후 1시(현지 시간) 모스크바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청와대가 ‘오후 11시에 중계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시간을 앞당겨 달라’고 해 바꿨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그는 더 나아가 자신도 “(시간을 바꾸느라) KBS에 사정사정했으며, 토론회가 끝난 뒤 KBS에 ‘큰 신세를 졌다’며 사후 감사의 뜻도 전했다”고 했다.
재단 측은 이 같은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 자료에서 자신들을 대표하는 정 이사장이 직접 한 말을 부정하는 근거도 조목조목 밝히지 않았다.
재단 자료는 또 “정 이사장이 비(非)보도를 전제로 설명했다”며 취재원 보호를 문제 삼았다. 일선 현장에서 취재원이 여러 명의 기자를 상대로 비보도를 요청한 뒤 나중에 보도가 나오면 기자들은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몰리기 쉽다.
그렇지만 이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모스크바 한국 특파원은 3명으로 누구도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비보도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
기자는 재단의 보도자료에 대해 다시금 정 이사장의 말을 듣고자 했으나 러시아를 거쳐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를 방문하고 있는 정 이사장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재단 측이 조직의 대표와 청와대를 감싸고 싶어 하는 심정이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대표의 발언을 뒤집고 사실과도 다른 취재원 보호 문제까지 거론하며 ‘오보’를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처사다. 입맛대로 보도가 나오지 않으면 ‘오보’라며 언론에 책임을 미루는 행태도 이 정부 들어 낯익지 않은가.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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