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한국에 ‘하루키’가 없는 이유

  • 입력 2007년 6월 27일 02시 59분


6월 민주항쟁 이후 만 20년인 올해는 유난히 떠들썩했다. ‘그날’로 말할 것 같으면 나도 주역 중 하나다.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 2학년생이었지만 거리를 쏘다녔고 이한열 장례식 100만 인파에도 섞여 있었다. 이미 몇 달 전에는 6월 민주항쟁의 불씨이자 단일 사건으로 최대 구속자(1228명)를 낸 시국사건인 건국대사태 당사자로 짧은 ‘옥고’까지 치렀으니 세칭 민주화 운동권 중 하나다.

이제는 민주화 경력이 훈장이 된 세상이니 ‘그날’을 기념하면 으쓱해져야 할 텐데 오히려 짜증이 났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민주화 경력을 내세우며 열변을 토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 때문이다. 매해, 그것도 올해는 더 유난스레 떠들어대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뒷맛이 썼다.

이 광속의 시대에, 더구나 한국처럼 ‘10년이 남의 나라 100년’이랄 정도로 변화무쌍한 나라에서 ‘과거 경력’이 이토록 오래 약발이 먹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다.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제는 그 주역들이 주류가 된 세상 아닌가.

각종 기념 토론회에서 가장 새롭고 공감이 가는 평가를 내놓았던 사람은 이진경(서울산업대) 교수라고 본다. 이 교수는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 사회는 민주-반민주가 아니라 다수(주류)와 소수(비주류)라는 양극화 사회로 변했다”면서 “과거 민주 진영에 있었으나 현재는 다수에 속한 노무현 대통령과 대기업 노조가 다름 아닌 ‘뉴라이트(새로운 보수)’”라고 말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지도부를 보라.)

이 교수는 “대통령이 정책은 진보가 아닌데도 스스로를 진보라 믿는 것은 자신이 과거 싸우던 곳에 아직도 그대로 서 있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이 교수는 학교 다닐 때 유명한 좌파 이론가였다.

(좀 뜬금없지만) 한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었던 나는 왜 한국에서는 ‘하루키적’ 허무가 나오지 않을까 자문한 적이 있다.

알려졌다시피 하루키는 와세다대 재학시절 일본 1960년대를 휩쓸었던 극력 좌파 운동권(전공투) 세대의 주역이다. 하루키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주변인이었다. 제도의 전복을 꿈꾸던 그가 아예 제도를 외면하고 안(나)으로 침잠함으로써 세계적인 작가가 된 것이다.

그가 제도를 외면한 건지 제도가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상실’은 주변에서 나온다. 한국의 운동권에서 ‘하루키적 상실’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느덧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 아닐까.

어쨌든, 20년 전 6월 거리를 누볐던 사람들은 대부분 생활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대학생이던 청춘들은 중년이 되었고 그들은 지난 시간을 추억할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1987년 이른바 ‘넥타이 부대’로 거리를 누볐다는 전직 대기업 임원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갈수록 세상이 좋아지지 않아 과거를 추억하는 게 싫다”고도 했다.

20년 전 6월 우리를 거리로 나서게 했던 것은 ‘양심’이었지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욕심이 아니었다. 어떤 보상을 기대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랬기에 당당했고 변화와 ‘생활’에 솔직해졌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옛날 그 자리에 서서, 고고한 척 혼자 다 하면서 뒤로 챙길 것 다 챙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너희가 6월을 아느냐.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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