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훈계에 교수들 얼마나 참담할까

  • 입력 2007년 6월 28일 23시 12분


노무현 대통령이 26일 152명이나 되는 전국 대학 총·학장들에게 쏟아 낸 훈계 같은 발언에 교수사회가 들끓고 있다. “우리 사회는 강자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며 조롱하듯 총·학장들을 몰아붙이는 모습은 일반 국민도 불쾌감을 느낄 정도였는데 교수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탄식과 분노가 이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총·학장들을 일제히 소집해 일장 훈시를 한 것이야말로 정치권력이라는 목소리 큰 강자의 횡포다.

지성(知性)의 상징인 총·학장들을 이렇게 대한 일은 군사정권 때에도 없었다. 서울대 장호완 교수협의회장은 어제 신문 인터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TV로) 생중계됐다”며 “대학의 수장인 총장들을 불러 모아 면박을 주는 것을 보면 이 정권이 얼마나 권력을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개탄했다. 오죽 참담했으면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26일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까지 열어 상황을 점검하고 정부를 성토했을까.

고려대 교수의회도 그날 긴급 상임위원회를 열고 고교 내신 실질반영률을 50%까지 높이라는 정부의 강압을 수용할지 여부와 정부의 행정·재정 압박 위협에 대한 최종 견해를 내달 4일 교수의회에서 결정키로 했다. 교수들의 이런 움직임은 대통령이 총·학장들을 그토록 무시하면서까지 내신 반영을 강요한다면 일전불사(一戰不辭)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른 대학들도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교수들은 청와대 토론의 심부름꾼 노릇을 한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처신에 더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평생을 교수로 봉직하면서 대학의 자존심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총·학장들에게 거의 강제적으로 토론회 참가를 독려했고, 토론회 내내 대통령의 말에 맞장구를 쳤기 때문이다. 많은 교수는 “권력의 맛이 달긴 단 모양”이라며 혀를 찼다.

우리나라는 학문과 학자를 숭상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연구와 교육을 본업으로 하는 교수에 대한 존경심도 여전하다. 그중에서도 총장은 ‘교수의 큰 별’이라 할 만하다. 그 별들이 대통령의 일장 훈시 앞에서 무참히 떨어졌다. 대학의 수치를 넘어 나라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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