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의 여론 대응도 낙제점이다. 정부가 ‘불법 정치파업’으로 규정하자 파업 지도부는 “금속노조 죽이기”라고 맞섰다. 그러면서 “1987년 이후 대공장 노조가 함께하는 연대투쟁이 정치파업, 불법 파업이 아니었던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민주화 투쟁 때는 불법 시위도 받아 주고 박수까지 쳐 주던 시민들이 지금은 왜 외면하느냐는 식이다. 이미 세상이 변했고 국민 의식도 바뀌었다. 해외 경쟁자까지 생각해야 하는 세계화 시대다. 노조의 투쟁 명분과 방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국민의 냉대를 면할 수 없다.
금속노조 지도부의 리더십도 바닥을 드러냈다. 파업을 독려하러 현장을 찾은 금속노조 간부들은 현대자동차 노조원들한테서 “우리는 금속노조의 총알받이가 아니다” “또 파업했다가는 고객도 친구도 못 만난다”는 성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런 일선 분위기가 지도부에도 전달됐을 것이다. 회의를 열지 않아도 현대차 노조 웹사이트의 자유게시판만 보면 누구라도 노조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이때라도 지도부가 파업을 연기하거나 취소했더라면 금속노조는 국민의 지지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파업 취소는 패배’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이 영상메시지에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잘 알지만 이번 싸움에서 실패하면 노조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한 그대로다.
지도부는 파업 결정을 물릴 경우에 입을 타격과 파업을 강행할 경우의 국민 비난을 견주어 봤을 것이다. 산별노조의 연대투쟁 때 선봉에 서는 대기업노조가 ‘우리의 이해와 산별노조의 이해가 다르다’며 이탈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했을 것이다. ‘노조가 탄압 받는다’고 몰고 가 노조원의 단결과 온정적 국민의 지원을 얻을 수도 있다고 봤을 것이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계산은 빗나갔다. 파업의 명분이었던 ‘FTA의 문제점’을 드러내지 못했고 산별노조의 힘도 과시하지 못했다. 공장의 전기 스위치를 꺼 버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싸운’ 끝에 금속노조가 얻은 것이 체포영장과 노노(勞勞) 갈등, 여론의 냉대다. 파업 비용이 아깝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비용을 들이면 뭔가 얻을 게 있는 모양이다. 산별노조 도입 때 지지자들은 “기업 차원에서 다루지 못하는 사회적 의제를 노사가 다룰 수 있게 되므로 기업 내 불필요한 마찰과 파업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반대하는 측에선 “같은 산업 내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임금 격차가 커서 산별교섭이 안돼 교섭비용만 늘어나고 연중 정치파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실은 어떤가. 최근 3년간 산별노조 주도로 분규만 부쩍 늘어난 데 이어 이번 정치파업으로 산별노조의 문제점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결과로 현대차 노조원들 사이에서 ‘산별노조 탈퇴’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게 파업의 성과라면 성과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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