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비해 손학규 씨를 포함한 범여권 주자들은 다 합쳐 15%에도 못 미쳤다. 이들 가운데 이해찬 씨는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조사에서 2.5%를 얻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7일 MB, GH에 대해 “플라이급이나 라이트급밖에 안 된다”며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최소한 미들급은 된다. 한 방이면 그냥 간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선거를 많이 기획해 봐서 아는데, 이런 정도의 상황은 2002년 대선 때보다 훨씬 쉽다”고 장담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두 (예비)후보에 관한 중요한 자료들을 우리가 갖고 있다”며 “앞으로 서너 달은 궁금해야 된다. 조사 과정에서 자료가 나온 것이다. (대선에) 대단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영달, 이해찬 씨의 릴레이 발언은 한나라당 쪽으로 기울어진 대선 판도를 흔들어 놓기 위한 여론조작 심리전술의 성격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국민과 한나라당을 잠시 교란하려는 술책이라기보다는 ‘메가톤급 네거티브 태풍’ 예고다.
정권 연장을 위한 ‘非대칭 전략’
MB와 GH는 당내 경선에서만 이기면 대권 고지에 올라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나라당과 범여권에 대한 국민 지지도의 심한 비대칭성(非對稱性)이 두 유력 주자를 그런 착시(錯視)에 빠지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여권이 현저하게 열세(劣勢)라는 바로 지금의 판세는 오히려 한나라당의 위기(危機)를 증폭시킬 소지가 농후하다. 여권이 이른바 ‘비대칭 전략’에 사활(死活)을 걸 조짐이기 때문이다.
흔히 비대칭 전략이란 군사력의 균형이 결정적으로 깨졌을 때, 즉 적의 전력(戰力)이 압도적 우세일 때 ‘한 방’에 전세(戰勢)를 뒤집을 수 있는 전략을 말한다. 국가 차원에서 본다면 북한의 ‘핵 카드’가 대표적이다. 북한 정권은 주적인 미국뿐 아니라 남한에 대해서도 전력 열세를 만회하기 어렵게 되자 핵 개발에 다걸기(올인)해 작년 10월 실험까지 했다. 체제 유지의 마지막 수단으로, 2300만 주민의 굶주림과 희생 위에서 강행해 온 비대칭 전략이 곧 ‘더티 밤(Dirty Bomb·더러운 폭탄)’ 개발인 것이다.
국내 상황으로 돌아와, 이해찬 씨의 ‘한 방’론(論)이나 장영달 씨의 ‘X파일’ 흘리기는 올해 대선의 비대칭 전략으로 MB, GH에게 ‘더티 밤’을 투하하겠다는 협박 또는 선전포고다.
2002년에도 한나라당과 여당 민주당의 대선 초반 전력은 이회창 필승론이 공공연할 정도로 비대칭적이었다. 그런 여건에서 출현한 것이 ‘병풍(兵風)’이라는 더티 밤이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을 확산시키는 데 주효했던 이 더티 밤은 김대업이라는 병무 브로커가 생산(폭로)한 것처럼 돼 있었지만 대선 후에 밝혀진 사실을 종합해 보면 ‘거대한 음모의 합작품’이다. 민주당-일부 좌파 시민단체-수사검찰 일각-일부 언론계의 공모작(共謀作)이다.
이번 대선은 5년 전보다 훨씬 더 비대칭적으로 여권이 약세다. 이는 ‘참여정부’ ‘서민의 정부’라는 립싱크(가짜 목소리) 아래 민의(民意)를 무시하고 민생을 괴롭힌 죄과(罪過) 탓이지만, 그럼에도 좌파 재집권 전략의 최고 배후(背後)인 김대중(DJ) 씨는 ‘정권 연장을 위한 사생결단’을 범여권에 주문하고 있다.
이해찬 씨는 “선거를 많이 기획해 봐서 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선 어떤 사생결단의 기획물이 나올까. 한나라당 사람들은 범여권의 ‘프로’들과 대적할 역(逆)비대칭 전략, 그 이전에 자신들을 던져 사생결단할 각오와 행동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선거는 어차피 詐欺다”
범여권은 좌파 정권 9년여 사이에 확보 또는 자체 생산한, 장영달 씨가 말한 ‘중요한 자료들’을 합법이건 불법이건 가리지 않고 흘릴 것이다. 적지 않은 국민은 정보 생산·유통의 기만성(欺瞞性) 또는 불법성을 간과한 채 무대 위의 칼춤에 넋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날 10여 년간 DJ 측근에 있었던 한 인물은 최근 몇몇 언론인 앞에서 “선거는 어차피 사기(詐欺)다”고 외쳤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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