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외교 안보 지형에 상당한 변화의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핵 폐기를 논의할 6자회담이 재개될 기미가 보이고 북-미관계도 급속도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집권을 노리는 정당이라면 마땅히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옳다. 햇볕정책을 ‘대북 퍼 주기’로 간주해 온 경직된 자세로는 향후 예상되는 분단 해체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새 정책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실효성과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모든 대북정책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변화를 유도하고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큰 틀에서 상호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채찍’과 ‘당근’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북을 몸으로 상대하면서 체득한 교훈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새 정책은 채찍은 뒤로 돌리고 당근만 앞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햇볕정책이 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한 마당에 한발 더 나간 느낌마저 준다. 좌우(左右)를 가리지 않고 듣기 좋은 정책들만 모아 놓아 ‘비빔밥 정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예컨대 서울∼신의주의 신(新)경의고속도로 건설 지원, 북한 산업연수생 연 3만 명 수용 등은 훨씬 심한 대북 퍼 주기가 될 소지마저 있다.
국민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지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지지층이라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대선을 의식해 잠시 옷을 바꿔 입는 식이 돼선 곤란하다. 범여권의 북풍(北風)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선제공격’ 차원에서 나온 것일지 모르나 대북정책은 이를 뛰어넘어 당의 이념과 체질 속에서 체화(體化)된 정책이어야 한다. 기회주의적인 대북정책은 국민의 우려만 키울 뿐 진정한 남북관계의 진전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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