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는 미국에서 투자자를 보호해 주는 최후의 보루로 꼽힌다. 준사법 기능이 있어 엄정한 조사로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는다. 홈페이지에 ‘투자자 정보’라는 섹션을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도 제공한다.
최근 이 투자자 정보 섹션에 ‘테러 지원국 거래기업 리스트’가 올라왔다. 미 국무부가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한 북한 쿠바 이란 등 5개국과 거래한 기업 89개사 리스트를 공개한 것이다. 이 리스트엔 뜻밖에도 한국의 한국전력공사가 포함됐다.
한전이 북한 경수로 사업에 참여했고 개성공단 전력 공급을 맡은 게 문제가 됐다. 한전은 1994년 뉴욕 증시에 상장한 뒤 연차보고서에서 매년 이 사실을 공개해 왔다.
대북 경수로 사업은 한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함께 참여한 사업이다. 개성공단 사업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기업에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한전을 ‘북한 거래기업’으로 분류한 것은 투자자들에게 한전이 ‘테러지원 기업’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이번 테러지원국 거래기업 리스트 공개에 대해선 월가에서도 불만이 많다. 국제은행가협회(IIB)는 5일 성명을 내고 “SEC가 테러 지원국 5개국과 거래한다는 이유만으로 다국적 금융기관 다수를 블랙리스트에 포함시켰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황당한 사례가 많다. 수단과의 거래기업으로 명시된 제약회사 임텍은 수단의 토착 질병 치료약 개발에 관여해 온 것 때문에 리스트에 포함됐다. 영국의 미디어 기업 로이터는 이란 시리아 쿠바와 거래한 것으로 나타나 ‘3관왕’에 올랐다. 논란이 일자 SEC 측은 “웹 사이트에 올린 정보는 결코 블랙리스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월가와 당사자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SEC는 ‘테러 지원국 거래기업’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붙이기 전에 좀 더 신중하게 해당 기업들의 ‘혐의’를 확인했어야 했다. 애꿎은 기업을 테러와 연관시킨 뒤 ‘별 게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이들 기업에 대한 테러나 마찬가지 아닌가.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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