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우]핵심은 핵시설 폐쇄가 아니라 ‘기존 핵’이다

  • 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8분


북핵 문제가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대북 직접 대화에 나서 2·13합의를 성사시킴으로써 북핵 문제의 해결 기미가 보였으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계좌 문제로 좌초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 계좌의 동결이 해제되면서 북한은 핵 폐쇄 및 봉인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미국도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만족감을 표시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 발걸음이 한결 빨라졌다. 비료 30만 t의 선적을 서둘러 완료했고 쌀 40만 t의 선적도 개시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은 한미 양국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핵 해결을 위해 불가피한 실용주의적 선회라는 의견과 북한의 기만적인 핵 게임을 연장시켜 줄 졸책이라는 비판이 대립했다.

2·13합의는 북한 핵시설의 폐쇄 봉인 불능화를 규정하지만 이미 보유한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폐기한다는 내용은 없다. 또 다른 핵무기 제조 경로인 농축시설을 규명하는 조항도 없다. 합의를 이행해도 여전히 ‘기본 핵능력’이 남는다는 뜻이다. 북한은 2·13합의만을 이행하거나 이행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즉 일정한 핵 능력을 유지하면서 평화공세를 통해 충분한 반대급부를 얻어 낼 수 있다고 믿을 이유가 많다.

첫째, ‘평화의 바람’이 북한에 유리하게 불고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해체(CVID) 외의 타결을 불용한다던 미국이 지금은 2·13합의를 이행하겠다는 북한의 말에 흡족해하고 한국은 대북 지원의 속도를 더하고 있다.

북한의 내부 사정도 그렇다. 일정한 핵 능력을 유지하니 절체절명의 체제수호 수단을 여전히 지킨다. ‘지도자의 위대한 과학 업적으로 미 제국주의를 극복했다’는 선전 논리를 스스로 철회할 필요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남한을 위협할 수 있고 남한 내 보혁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

둘째, 북한의 행보가 한국의 정치 상황과 불가분의 연관 관계를 가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13합의의 이행 과정은 북한이 많은 반대급부를 얻으면서 한국 언론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장밋빛 기사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간이다. 이런 카드를 거머쥔 북한이라면 어떻게든 남한의 대선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지 않을까.

북한이 이런 오해를 받기 싫다면 스스로 진심을 보여 주면 된다. 완전한 핵 폐기를 약속하는 추가 합의를 조기에 수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대북 지원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 미국도 북한이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내놓고 농축프로그램의 존재를 고백한다면 이것을 해체하거나 인수하는 데 돈을 아낄 필요가 없다.

북한의 핵시설 폐쇄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핵 폐쇄 소식에 도취되어 이후에 펼쳐질 시나리오를 내다보지 못한다면 너무 근시안적이다. 냉정한 관찰이 필요하다.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 약속을 미루고 핵 폐쇄 및 불능화와 관련한 뉴스거리를 생산하는 데에만 매달린다면 ‘시한부 평화 공세의 시작’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대북 지원 준비와 함께 핵 평화 공세에 대비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핵 게임에서 북한은 조건(Term) 속도(Tempo) 시기(Timing) 등 3T를 장악했다. 우리는 경계(Precaution) 신중(Prudence) 인내(Patience) 등 3P로 대처해야 한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