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태훈]동대문야구장 쓸쓸한 퇴장

  • 입력 2007년 7월 10일 03시 00분


“쿵짝 쿵짝! 장충고 최강!” “자장면 시키신 분!”

제61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장충고의 2연패로 막을 내린 5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은 냉엄한 승부의 세계와는 달리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우승한 장충고는 동문 300여 명이, 준우승에 머문 천안북일고는 재학생 1500여 명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했다.

고교야구의 산실인 동대문야구장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또 있다. 노래방 기기까지 동원해 춤을 추거나 허기가 지면 중국 음식점에 주문을 하는 사람들. 한쪽에선 가볍게 음주를 하거나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나지만 그리 추해 보이지는 않았다.

3루 쪽 담벼락에는 ‘한국야구의 성지, 동대문야구장 수호’ ‘동대문운동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실 벽 곳곳은 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그늘진 구석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고 객석 일부는 깨져 있다. 오랜 세월을 야구와 함께하면서 생긴 흔적인 셈이다.

‘한국야구의 메카’ 동대문야구장이 11월이면 철거된다. 1925년 10월 경성운동장으로 처음 문을 연 것으로 추정되는 동대문야구장은 1959년 현재 규모의 야구장으로 조성됐다. 장효조 선동렬 등 수많은 고교야구 스타를 탄생시켰지만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1984년 서울 잠실야구장의 완공으로 관중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동대문야구장은 패기 넘치는 아마추어 야구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명소였다.

서울시와 대한야구협회는 동대문야구장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는 대신 2010년까지 대체 야구장을 구로구 고척동에 세우기로 합의했다. 크고 작은 야구장도 추가로 6개를 만들기로 했다.

생활체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야구장을 늘린다는 소식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당장 내년에 열릴 황금사자기 대회 등 전국대회는 400석짜리 간이 야구장에서 초라하게 치러야 할 형편이다.

이에 유서 깊은 야구 건축물을 야구 박물관 같은 의미 있는 공간으로 꾸미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동대문야구장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높다. 20여 년간 동대문야구장을 찾았다는 한 중년 남성은 “동대문야구장은 갈 곳 없는 이에게 놀이공간이자 휴식처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황태훈 스포츠 레저부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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