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수영]근로자 울리는 비정규직보호법

  • 입력 2007년 7월 12일 03시 00분


7월부터 적용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마련했는가. 얼마 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12년을 근무하다 해고된 비정규직 여직원의 자살 기도 사건과 작금의 이랜드 사태를 보면서 비정규직 보호법이 진정으로 근로자를 보호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차라리 법 시행 이전으로 되돌려 달라는 어느 비정규직 근로자의 절규를 접하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해질 뿐이다.

중소기업 고용환경 더 나빠져

비정규직 보호법은 정규직과의 차별을 금지하고 반복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 기업은 이제 비정규직의 임금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내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아웃소싱하거나 다른 비정규직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이다.

세 가지 모두 합법적이다. 노동계는 당연히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지만 정규직은 인건비 부담이 높고 불황기에 해고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이 수용하기 어렵다. 기업은 비정규직의 활용을 통해서 경기 변동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려 한다.

노동계는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안정만을 요구한다. 결국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데 노사 모두 동의하지만 기업의 고용 규모나 고용 형태에 대해서는 서로 극명한 시각차를 보인다.

일부 능력 있는 기업은 법 취지에 부응할 수 있지만 지불 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불가피하게 고용 계약을 해지하거나 아웃소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당수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환경이 더 불리해진다. 비정규직의 차별시정 관련 부분은 2009년에 모든 기업으로 확대 적용되므로 노사 간 갈등과 혼란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은 오래전부터 충분히 예견됐다. 경영계는 문제점을 정부와 정치권, 언론을 통해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비정규직을 포함해 취약계층 보호라는 대의명분에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진정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들을 보호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모든 것을 법에 의해 해결할 수는 없다. 제도 개편에 따른 부작용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최근 저성장시대에 접어들면서 일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이며 일자리 확보 문제는 최대 당면 과제가 됐다. 우리 사회에는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실질적인 실업계층이 200만 명 이상 존재한다.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하면 강할수록 실업률은 더 높아지고 국가전체의 경쟁력이 저하된다. 실제로 비정규직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프랑스와 독일은 실업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지금처럼 경영 환경이 매우 어렵고 특히 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과도한 우리 현실에서 비정규직의 보호책임을 전적으로 기업주에게만 기대하기는 무리다. 기업의 생존이 담보되지 않는 근로자의 일자리 보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2년 이상 고용 제한’ 폐지해야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은 고용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해결해야 한다. 노동시장과 기업의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규제는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뿐이다.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현재 상황에서 비정규직 보호는 실업자가 보기에 취업자만의 화려한 잔치로 비칠 수 있다.

불합리한 차별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만으로도 비정규직 보호는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해고를 조장하는 2년 이상 사용 제한은 폐지하는 것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법안을 고치자는 요구가 일견 성급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보호와 기업의 생존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선택할 최선의 목표임을 고려한다면 비정규직 법안을 일부 개정하는 데 결코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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