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일본 내 홀로코스트 연구 권위자 아라이 신이치 교수

  • 입력 2007년 7월 12일 03시 00분


“역사 화해를 위해서는 권력의 의지와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아라이 신이치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그는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처럼 과거를 확실하게 사죄할 수 있는 인물이 일본 정치가 중에 없다는 점이야말로 일본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역사 화해를 위해서는 권력의 의지와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아라이 신이치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그는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처럼 과거를 확실하게 사죄할 수 있는 인물이 일본 정치가 중에 없다는 점이야말로 일본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지난달 26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 결의안은 7월 중순경 하원 본회의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내에서는 대부분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분위기이지만 일각에서는 ‘군위안부 문제의 당사국이 아닌 미국에서 왜 지금 이런 움직임이 빚어지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일본 내 대량학살(홀로코스트) 연구 권위자인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82) 이바라키대 명예교수는 이에 대한 답으로 “이번 결의안의 배경에는 최근 일본의 내셔널리즘 고양을 경계하는 미국 내 움직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미국에서 이슈화되기에 지금이 적절한 시점이라는 뜻인가.

“역사적 맥락이 있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둘러싼 미국 내 논의는 이번이 ‘세 번째 물결’이다. 첫 번째는 1991∼1992년에 있었다. 당시 미국 언론의 진주만 공격 50주년 특집 기사에선 ‘일본은 중국대륙에서의 만행과 군위안부 문제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논조가 대대적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물결은 2000년을 전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일어났다. 1999년 7월 톰 헤이든(민주) 상원의원이 주 의회에 징용배상특별법(일명 헤이든법)을, 8월에는 마이크 혼다(민주) 하원의원이 ‘일본 정부의 명확한 사죄와 희생자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를 제안해 채택됐다. 그러나 이에 따른 소송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 결의안은 일본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재직하던 시절부터 추진되던 것이 결실을 본 것이다.”

아라이 신이치명예교수
△1926년 도쿄 출생 △1949년 도쿄대 졸, 주오코론(中央公論)사 입사 △1974년 이바라키(茨城)대 교수 △1982년 역사학연구회 위원장 △1991년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스루가다이(駿河臺)대 현대문화학부 교수 △1993년 ‘전쟁책임자료센터’ 설립 △2001년 스루가다이대 명예교수 △저서: ‘원폭투하를 향한 길’, ‘게르니카 이야기-피카소와 현대사’ ‘홀로코스트의 궤적을 따라서’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등

―일본의 전쟁 책임을 논하는 이번 ‘세 번째 물결’의 특징은….

“일본 내 ‘국가 프라이드의 회복’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미국 공화당 내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이웃나라의 반발 속에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하에서 개헌을 향한 움직임을 구체화하자 이를 경계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에는 무마될 수 있었는데 아베 정권에 와서 문제가 된 이유는….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의회의 분위기가 바뀐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 문제를 다루는 아베 총리의 ‘조잡한’ 대응도 문제를 키웠다.”

―미 하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돼도 구속력은 없는데….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12월이면 난징(南京) 학살 70주년이 된다. 미국 워싱턴과 캐나다 토론토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심포지엄이 열리고 학살을 비판하는 영화도 개봉된다. 일본이 대응을 잘못하면 국제사회의 불신도가 더 깊어져 미일동맹에 균열을 초래하거나 일본의 전략적 입지를 훼손할 수 있다. 가령 납치 문제를 계속 거론해 온 일본은 6자회담 진행 과정에서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 고문을 비롯한 일본의 ‘친구들’은 이를 우려해 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옹호하기 어렵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거다.”

―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 내에서는 “‘아시아평화기금’을 통해 보상도 했으니 할 만큼 했다”는 의견이 대세인 것 같다.

“‘기금’을 통한 보상의 한계에 대해서는 국내외의 비판이 적지 않지만 당분간은 그걸 넘어서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야당이 2000년 이래 군위안부에 대한 정부의 사죄와 명예회복, 배상금 지급 등을 요구하는 ‘전시 성적(性的) 강제 피해자 문제 해결촉진법안’을 국회에 거듭 제출해 왔지만 자민당이 다수당인 한 통과되기 어렵다.”

아라이 명예교수도 이 법안을 기초하는 데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지론은 역사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권력의 의지와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1993년 군위안부에 대한 정부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 담화도, 1995년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 담화도 정치 리더들의 결단에 따라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위령탑에 무릎을 꿇고 헌화하며 사죄한 것이나 1985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과거에 눈 감는 자, 현재에 대해서도 눈멀게 된다’고 한 연설은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가 중에는 그 같은 행동을 보여 주거나 감동적인 연설을 한 사람도, 할 사람도 없다. 우선은 7월 말 참의원 의원 선거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총리가 바뀐다 해도 역사문제에 바람직한 자세를 가진 인물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아라이 명예교수는 19세 때 제2차 세계대전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평생 유럽의 홀로코스트 극복 과정, 일본의 전쟁범죄와 책임을 연구해 왔다. 2005년 11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을사 5조약 강요 100년’ 심포지엄에서는 을사늑약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사료를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인 징용 피해자들의 보상 소송을 돕기 위해 뛰어다니면서 틈틈이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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