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제의는 다음 주 6자회담이 재개되는 가운데 한반도 종전(終戰)선언이 모색되고,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제반 상황을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일련의 정지작업이다. 1953년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북과 미국임을 상기함으로써 미국과 직접대화의 틀을 구축해 핵 협상은 가능한 한 늦추면서 양보는 더 많이 얻어 내겠다는 속셈이다.
북한이 거론한 ‘미국의 핵’은 그들의 표현대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말한다. 미국의 핵 공격권에서 북을 빼라는 것이다. 이는 곧 남한을 보호하고 있는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라는 말과 같다. 향후 6자회담의 진전에 따라 북의 핵 폐기에 일정한 성과가 있더라도 북이 이를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연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6자회담을 북-미 핵 군축회담으로 몰아가려고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우리를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들은 북의 핵 폐기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평화체제 논의 구조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도 속이 들여다보인다. 우리가 정전협정 서명국은 아니나 평화협정 체결의 실질적 당사자임은 1997∼99년 남한 북한 미국 중국의 4자 평화회담에서도 이미 공인된 바 있다. 북이 이를 잘 알면서도 다시 들고 나온 것은 24일경 재개될 장성급 회담을 비롯한 남북 군사대화에서 우위를 차지하자는 의도다.
북한은 언제나 우리의 선의(善意)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왔다. 평화체제 논의는 자신들과 미국에 맡기고 우리는 쌀이나 대라는 얘기인데, 그래도 대북 저자세와 퍼 주기로 일관할 셈인가. 북이 끝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어떤 지원도 중단하겠다는 원칙과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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