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평화체제, 북핵을 머리에 이고 논의할 순 없다

  • 입력 2007년 7월 19일 23시 04분


남북 평화체제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정부가 조만간 평화체제와 관련한 제안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운을 떼자 신언상 차관은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뒤를 받쳤다. 노무현 대통령도 어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연설에서 정전(停戰)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관급회담을 예정보다 앞당겨 8월 초에 열자고 제안한 것도 정부가 이미 내부적으로 상당한 준비를 했다는 시사 같다.

반세기 넘게 계속된 정전체제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평화체제 구축의 선행 과제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남북이 정전체제 속에 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요인은 군사적 신뢰의 부재(不在)였다.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북한이 핵까지 개발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6자회담이 재개됐으나 핵시설 불능화(不能化) 방안을 논의하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남북의 평화적 공존을 목표로 하는 평화체제 논의는 북핵 문제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해결 국면에 접어든 뒤에 시작하는 게 옳다.

정부는 ‘평화체제 협상을 올해 안에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미국을 의식하는 듯하지만 이 또한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미국은 대(對)한반도 정책을 세계전략의 일부로 다룬다. 미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남북문제를 종속변수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개입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쫓기는 상태에서 한반도 현안에 매달린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도 많다. 우리가 미국에 섣불리 맞장구칠 일이 아니다.

더구나 북한은 지난주 한반도 평화와 안전 보장을 위한 북-미 군사회담을 제의하며 한국을 배제했다. 평화체제 논의를 성급하게 추진하려다가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선언이나 합의가 부족해 평화를 못 이루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어떤 합의라도 휴지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할 만큼 했다. 북의 핵 포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야말로 평화체제를 앞당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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