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후 만델라 전 대통령은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과 기자회견을 갖고 범세계적 문제의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세계 원로 싱크탱크를 출범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측근들이 그를 ‘한국의 만델라’로 선전해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옥고를 치렀다. 70대의 나이로 대통령이 됐고 임기 중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만델라가 부러울 법하다. 곧 90대로 들어서는 만델라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는 흑인들뿐 아니라 백인들도 걱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가 단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국가의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하는 ‘화해자’ 역할을 유감없이 해낸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만델라가 가진 ‘위대한 화해자’로서의 이미지도, 역할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그의 가장 큰 우군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또한 세의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경쟁자였다는 사실은 해소될 수 없는 부담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지역적으로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분화해야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각 민주화 세력의 한쪽만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어렵사리 집권한 DJ에게는 대화합의 길이 남아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윽고 유력 언론에 대한 탄압에 들어갔고 전 국민의 합의를 얻지 못한 ‘햇볕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이는 잭 프리처드 전 미국 국무부 대북교섭 담당 특사가 회고하듯 기괴한(bizarre) 한미관계를 가져왔고 북녘에 대한 짝사랑은 미국이 오히려 ‘그쪽 국민이 이해하겠느냐’며 염려할 정도가 됐다.
이로써 DJ는 만델라의 ‘국민 화합의 상징’이라는 길과 점차 반대의 길을 걷게 됐다. 어쨌거나 지나간 일을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염려되는 것은 오늘날까지 현실정치에 깊이 발을 담근 그의 모습이다.
그는 최근 범여권에 ‘대통합’을 거듭 주문하며 대담하게 대선 구도에 개입했다. 오죽하면 정치경력 30년에 가까운 원로 정치인이 “그의 지원을 받지 못해 범여권 후보 자격이 있는지 고민 중”이라고 했을까.
더더욱 걱정되는 것은 그가 그리는 통합의 실상이다. 그의 의중은 호남과 충청을 연결하는 ‘서부벨트’로 대선을 치르는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나마 지역주의 청산에 목소리를 높여 온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도 배치되는 수렴청정이다. 그는 결국 일부 지역만의 수장으로서 이 나라에 깊은 골을 남기려는 것인가.
지금까지 만델라와 DJ의 길이 달라진 것은 운명의 힘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가 만델라의 길과 대비되는 역주행을 멈추었으면 싶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민주화를 향한 여정에서 세운 그의 공로마저도 빛이 바래게 될 것이다.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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