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쯤 정치권의 한 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자료의 출처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채 기사화할 수 있는지부터 타진했다. 자료의 출처와 내용을 확인하기 전엔 약속해 줄 수 없다고 잘랐다. 말하는 투로 보니 특정 후보를 흠집 내는 자료였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다른 기자들에게도 시차를 두고 이런 제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뭔가 떳떳하지 않은 구석이 있는지 제공자가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얼버무리곤 하는 예가 많다. 그러나 이들 자료에는 정상적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가 담겨 있다.
제작 과정과 유통 경로가 모두 음습해 보이는 이런 자료들은 대선 때마다 어김없이 정치권에 나돌고 있다. 이들 자료 중에는 언론에 보도된 것도 꽤 있을 법하다.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던 국가정보원이 야당 유력 후보의 뒷조사를 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정보기관의 뒷조사 자료를 근거로 특정 후보를 공격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을 뿌리째 흔든다는 점에서 지탄받을 일이다.
절차적 정당성과 실체적 진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불법 감청을 하고 고문을 해서 밝혀낸 ‘실체적 진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차이는 적법절차를 지키고 존중하느냐에 달려 있다.
경험에 따르면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인들은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적법절차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특히 사생결단 식으로 진행되는 선거 과정에서 유력 후보끼리 치열한 폭로 공방을 벌이다 보면 때로 절차적 불법의 유혹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차적 불법에 눈을 감거나 외면하는 것은 더 큰 불의를 초래하는 지름길이다. 적법절차를 어긴 어떤 후보든 그 대가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더 큰 불의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실체적 진실은 무모하고 때로는 위험하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대선을 앞둔 우리 사회에서 적법절차의 대원칙이 무너지는 듯한 조짐이다. 아무리 중한 죄를 저질렀더라도 고문을 하거나 강제연행을 해서 자백을 받아내면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형사소송법에 이런 장치를 두는 것은 절차적 정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무엇보다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또 개인의 사생활도 위협받게 된다. 한번 허물어진 원칙을 다시 세우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빅 브러더는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만 뒷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나의 e메일과 문자메시지를 훔쳐볼 수 있고 전산망을 통해 금융계좌와 신상 정보까지 뒤질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극단의 정의는 극단의 불의와 통한다.’ 로마시대의 법언(法諺)을 이렇게 새겨본다. ‘실체적 의혹’에 눈멀어 적법절차를 훼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계하는 뜻으로.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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