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화기념관, ‘덕수궁 터 학교운동장’ 넘보지 말라

  • 입력 2007년 7월 31일 02시 59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서울 덕수궁 옆 덕수초등학교 운동장에 지상 5층, 연건평 1만6500m² 규모의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신축하려는 데 대한 반대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교원단체총연합은 “아이들이 뛰어놀 운동장을 빼앗는 것은 공공기관의 횡포”라고 성명을 냈고 이 학교 학부모회는 어제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해당 땅은 원래 덕수초교 소유였다가 행정자치부 소유로 넘어갔지만 그 후에도 이 학교가 임대형식으로 쓰고 있다.

다른 곳에도 얼마든지 기념관을 지을 수 있는데 굳이 학교운동장을 빼앗으려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민주화기념관이 무슨 성지(聖地)라도 되는 양 생각한다면 이 또한 오만한 권위주의일 뿐이다. 운동장 없는 학교는 폐교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 기념사업회 인터넷 게시판에는 “민주화 투사라는 사람들이 권력이 되어 학교를 압박하고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의 운동장을 빼앗고 있다”고 비난하는 글이 올라 있다.

행자부가 이 땅을 기념관 터로 넘겨준 것부터가 적절치 못했다. 이 땅은 사적지인 덕수궁과 거의 붙어 있으며 옛 덕수궁의 의효전 터였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이 땅과 불과 수십 m 떨어진 옛 경기여고 터에 대사관 건물을 지으려다 실패했다.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문화재위원회가 2005년 “덕수궁 터에 속해 있어 보존 대상이며 건물이 세워질 경우 덕수궁 경관을 훼손한다”며 불허했기 때문이다.

같은 잣대라면 덕수초교 운동장 역시 건축허가가 애당초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민주화기념사업회와 행자부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기에 이런 곳에 기념관을 짓겠다고 나서는지 의아스럽다. 문화재위는 신청이 들어와도 차후 덕수궁 복원과 경관 보호를 위해 허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문화재 관리의 원칙이 선다.

본보도 대한민국 민주화의 한 밑거름이 돼 왔다고 자부하지만 민주화기념관 건립이 그토록 시급하고 절실한지부터 의문이다. 굳이 세우겠다면 어딘가 싼 땅을 구해서 지어도 문제될 게 없다. 대한민국의 경제 기적(奇蹟)을 이끈 사람들이 학교 터를 빼앗아 산업화기념관을 지으려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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