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션’이 보여 주는 진실
또 다른 감상법이 있다.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결탁해 신대륙에 재앙을 초래한 역사를 주목하는 것이다. 이구아수 폭포 위에서 평화롭게 살던 과라니족이 왜 외국군에 몰살당했는가.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인디언에게 더 좋았을 텐데…”라는 영화 속 추기경의 독백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모든 종교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좋은 소식(복음·福音)이 될 수는 없다. 영화에서 그려진 대로 가톨릭은 신대륙 정복의 한 축을 담당했다. 가톨릭은 이민족 지배를 부추기기도 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서 약탈한 첫 번째 금덩어리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가. 로마 교황에게 바쳐졌다. 교황은 그 금으로 성당의 천장을 도금하도록 했다. 지금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대성당’에 가면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이 공조해서 빼앗은 신대륙의 금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프간에서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된 19일 이후 줄곧 미션의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과라니족이나 멘도자, 그리고 가브리엘 신부는 참 신앙인이었다. 그들이 믿은 종교도 흠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와 왕실 권력층 꼭대기에서는 영토와 경제적 이익을 나누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세속적 탐욕이 끝내 종교를 변질시켰다.
봉사정신이 넘치고 한결같이 심성이 곱다고 알려진 피랍자들은 현대판 멘도자 또는 가브리엘 신부를 꿈꾸면서 아프간을 찾았을지 모른다. 피살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에게 따뜻한 인류애를 갖게 한 신앙도 할 일을 다했다. 불행의 근원은 그들을 아프간으로 보낸 한국 교회의 선교 시스템이다. 18세기 세속 권력과 결탁한 교회 권력이 무고한 신앙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듯 개별 교회 중심의 신중하지 못한 해외 선교가 ‘아프간의 비극’을 초래했다.
한국 교회는 반성해야 한다. 탈레반이 준동하는 위험지역에 젊은이들을 보낸 잘못을 통렬하게 질책해야 한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간을 지배했다. 알라의 이름으로 신정(神政)정치를 펼치겠다며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앞세운 공포정치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여성의 근로와 교육을 금지했고 국민을 공개처형과 신체절단형으로 다스렸다. 우상 금지를 핑계 삼아 바미안 석불 등 인류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오죽하면 수많은 이슬람 국가 가운데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만이 집권 시절 탈레반을 승인했겠는가.
이슬람도 기독교도 기도해야
탈레반은 기회를 노려 왔다. 그들이 쳐 놓은 그물에 한국인 23명이 한꺼번에 걸어 들어간 것이다. 탈레반은 기독교도들이 그들의 땅에서 설치는 것을 허용할 집단이 아니다. 아무리 선교가 아니라 봉사가 목적이었다고 주장해도 집권 경험까지 있는 탈레반이 누가, 왜 봉사단을 보냈는지 모를 리 없다.
탈레반은 평화와 관용의 종교 이슬람에 피를 묻혔다. 같은 수니파의 지도자도 보다 못해 “최후의 심판일에 큰 죄를 안고 지옥(자힘)에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녕 탈레반의 마음을 돌리게 할 수 없는 걸까. 이슬람과 기독교 신자가 함께 기도할 때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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