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키운 ‘학력 거짓말’
학력이나 별다른 배경 없이 이름만으로도 스스로 빛날 그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바람으로 ‘용서와 처분을 바라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씁쓸하다. 그들 중 대다수가 문화예술계 인사라는 점, 한때 친분을 나눈 사람도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더 착잡하게 느껴진다. 일도 손에 안 잡혀 커피나 한 잔 마실까 하고 보니 커피콩이 꼭 눈물방울처럼 생겼다. 학력을 속일 뻔한 적이 나에게도 있었다.
스무 살 때, 나를 가르치던 컴퓨터 그래픽 강사가 자신이 이사로 있는 디자인 회사에 취직이란 걸 시켜 주었다. 내가 일하게 될 메인 컴퓨터실에는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일곱 명의 팀원이 있었다.
어느 날 여성 팀원이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와 “자긴 여길 어떻게 들어왔어?”라고 물었다. 또 어느 날은 다른 이사가 혹시 외부에서 클라이언트가 와서 물어보면 디자인 계통 학과를 다니다가 휴학 중이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고 은밀히 권유하기도 했다.
한 7개월쯤 다니다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소설가 등단과 동시에 대학을 졸업한 때가 스물여덟 살이었다. 나를 아끼던 한 선생이 언젠가 학위가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 공부를 더 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해 주었다. 흔들린 적이 없진 않았지만, 방에 틀어박혀 소설만 썼다. 내가 진정 원하는 건 선생이나 석박사가 아니라 좋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였으니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학벌이 가장 큰 장애가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분야에선 다른 누구보다 열정이 있고 능력이나 경험도 갖췄다면 말이다. 10년, 30년이 넘도록 거짓이라는 ‘고통의 옷’을 입은 채 전전긍긍하며 허위(虛僞)의 삶을 살아왔을 그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남의 일만 같진 않다.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은폐하고 미화한 이유에는 불가피한 이해관계와 사회적인 어떤 척도나 강요 같은 게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거짓말은 사회적 규범 속에서 비난받아 마땅하고 처벌이 따라야 하겠지만 허위 학력 역시 사회적인, 암묵적인 동기와 요구가 없으면 불가능한 거짓말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학력이 밝혀진 유명 인사들이 그 문제만 제외한다면 지금 그 자리를 지키기에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고백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
거짓말의 첫 번째 구성 요건은 적어도 두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과 사회, 혹은 나와 당신. 진실은 불편하고 냉정하며 그곳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해도 만약 우리가 진실과 진술, 이 두 가지 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 진실 쪽일 것이다. 진실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는 진실이 아닌 것을 찾아낼 수는 있으며 진실이 아닌 것이 옳지 않다는 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하나의 커다란 무늬로 보면 그건 거짓과 진실, 고통과 행복 같은 정교한 무늬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지금은 모두에게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고백을 하는 용기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만약 모든 사람이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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