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 결과 이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표차는 1.5%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후보는 그나마 당원과 대의원, 일반국민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0.3%포인트(432표) 졌다.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이 후보는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12월 본선의 유리한 고지(高地)를 차지했지만, 어제 전당대회장에서 느꼈을 그 ‘서늘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후보’ 빼고는 다 버릴 각오 필요
12월 대선까지는 4개월이나 남았다. 이 후보가 헤쳐 나가야 할 길은 결코 순탄치 않은 험로(險路)일 것이다. 가장 급한 과제는 경선 과정에서 깊어진 당내 불화와 반목을 털어 내고 치유하는 일이다. 이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하나”라고 했다. 한나라당의 전신(前身)인 민자당 이래 역대 후보들이 한결같이 그 말을 외쳤지만, 경선은 늘 새로운 분열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이번엔 박 후보가 “경선 패배를 인정하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고 선언해 새로운 경선문화 정착과 통합을 위한 필요조건은 마련됐다. 그러나 ‘깨끗한 패배’만으로는 부족하다. 승자가 승자다워야 패자가 패자다울 수 있다.
당의 화합 하나 이루지 못하는 후보라면 국민통합을 말할 자격이 없다. 한나라당은 경선 후유증으로 정권을 놓친 전과(前過)가 있다. 이긴 쪽이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유혹을 경계하면서 아량과 인내로 패자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진 쪽의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후보는 ‘대통령 후보’ 빼고는 모든 것을 버린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경선은 당내 행사였지만 본선은 전 국민을 상대로 후보의 국가경영 리더십과 도덕성을 검증받는 과정이다. 그런 만큼 여권 등 반대세력의 도전이 더 집요할 것이다. 집권세력이 호락호락 정권을 내줄 리 없다. 끈질긴 네거티브 검증 공세에 갖가지 흑색선전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 후보는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이제 더 나올 게 없다”고 했지만, 공격해 올 상대를 가볍게 보는 것이라면 큰코다칠 오만일 수 있다. 당원과 대의원의 당심(黨心)이 박 후보에게 기운 까닭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물론 수권(受權) 능력과 국정 운영의 비전을 보여 줌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사는 일이 중요하다. 10년에 걸친 좌파정권의 국정 실패로 국민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 경제에 가장 강해 보이는 이 후보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가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현란한 구호나 실정(失政) 규탄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줄 비전과 행동계획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민의 휘어진 등을 펴 줄 수 있는 방안이 그 첫째다. 규제 철폐 등을 통해 기업의 투자 의욕을 살리고, 국민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요 생존전략이다. 이를 바탕으로 경쟁과 성장, 세계화를 촉진함으로써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 내야 한다. 세계가 버린 사회주의 좌파 이념에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가미해 국민을 속이려는 세력을 명쾌하게 물리칠 준비도 돼 있어야 한다.
좌파세력이 맹수라는 점 잊지 말아야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남북관계의 새 틀 짜기도 중요하다. 경선 과정에서 밝히긴 했지만 북한을 정상(正常)국가로 유도하면서 통일의 토대를 마련하는 구체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범여권의 남북관계 깜짝쇼와 평화무드 공세에도 속수무책으로 밀려선 안 된다. 우리가 세계 속에서 우뚝 서려면 국력 증진이 긴요하지만 우방과의 동맹관계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주(自主)의 허상에 사로잡히기보다 한미동맹을 심화 발전시키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의 실용외교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상대 없는 싸움을 해 왔다. 범여권이 아직은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본선이 시작되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초식동물이라면 좌파세력은 맹수라고 봐야 한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면 국민은 한순간에 지지를 거둘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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