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임진각에서 부른 납북자 이름

  • 입력 2007년 9월 2일 19시 33분


탈레반 피랍자 19명이 고국에 돌아와 기다리던 가족들의 품에 안긴 어제. 또 다른 피랍자인 납북자들의 가족들은 북한 땅이 바라다보이는 임진각 망배단에서 그리운 1250명의 아버지와 남편, 형제자매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강지형, 강병옥, 강형수, 강선형, 강성호….”

수십 년 동안 생사조차 모르는 혈육의 이름을 불러야 했던 그들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탈레반 피랍자 가족들의 심정 못지않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북한경비정에 끌려간 남편과 오빠를 35년 동안 그리던 70대 할머니가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지난달 27일 목숨을 끊었을까.

‘피랍·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 등 납북자 단체들이 망배단에서 ‘납북자 이름 부르기’ 행사를 한 2일은 김대중 정부가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6·15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북한에 돌려보낸 지 정확하게 7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들이 돌아간 그 길로 납북자들도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부르는 이름마다 담겨 있었다.

납북자는 6·25전쟁 당시 끌려간 8만2900여 명과 전후(戰後) 납북자 500여 명 등 모두 8만3400여 명이나 된다. 이들의 이름을 한 번씩만 불러도 꼬박 나흘이 걸릴 정도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는 1일부터 4일까지 모든 납북자들의 이름을 불러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으로 돌려보낸 다음 날 “(북한에 살아 있는) 국군포로가 300∼400명이고 납북자도 그 정도여서 전부 합해 700∼800명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납북자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공언(公言)했지만 공언(空言)이 되고 말았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 송환만 약속하고, 납북자 문제는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한 결과였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15세 때인 1967년 연평도 앞바다에서 조기잡이를 하다가 납북된 아버지를 지난 40년 동안 기다려 왔다. 그는 “2000년 정상회담 때 납북자 문제를 제기했다면 지금쯤 생사 확인은 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그는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납북자 문제가 반드시 거론돼야 한다면서도 그 가능성은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통일부 장관이 납북자를 월북자 취급할 정도인데 뭘 기대하겠느냐”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1차적인 책임은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북한에 있다. 그러나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을 계속하면서도 북한이 원치 않는 의제들은 기피해 온 우리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한 상상력의 빈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탈레반 피랍자 19명의 생환은 인질범과 협상한 것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아무튼 정부가 애쓴 결과였다. 그들의 생환을 바라보는 납북자 가족들의 심정은 그래서 더욱 남다르다. 납북자를 탈레반 피랍자와 비교하긴 어렵다. 피랍자 문제는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던 현재진행형 사건이란 점을 그들도 이해한다. 하지만 납북자 가족들은 정부가 탈레반 피랍자 구출에 들인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써 줬으면 한다는 걸 정부는 알고 있을까.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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