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혜실]대학이 변해야 취업문 열린다

  • 입력 2007년 9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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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동생이 실연을 당했다. 괜찮은 대학에서 쓸 만한 학과를 나온, 잘생긴 내 동생은 대낮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졸업 무렵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후 중소기업을 전전하더니 이제 ‘백수’로 돌아온 내 동생. 노산(老産)으로 낳은 막내, 감기만 걸려도 허약한 몸으로 낳은 탓이라던 우리 엄마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시대 흐름 뒤처진 전공 커리큘럼

실업 문제는 대학에서 심각하게 느낀다. 내가 가르치는 국문과는 한국 특유의 ‘입시 산업’이 있기에 논술 관련 강사로 취업하기는 쉽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통적인 국문과 직업으로 여기던 교직과 언론 분야는 고시 합격보다 더 힘들다. 출판 쪽도 쉽지 않다.

창작의 전통이 있음에도 시인이나 소설가 또한 한 해에 1, 2명 정도 나온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이 전공과 관련 없는 공사(公社)나 공무원시험에 매달린다. 이쯤 되면 4학년 학생에게 전공 공부하라고 야단치는 교수가 문제가 된다.

실업 문제를 걱정하다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해서일까? 고용 불안이나 임시직 문제가 현재의 가장 시급한 문제일까?

우리 과의 경우를 보면 전통적인 직업이 다 사양산업이 되고 있다. 출산율 감소로 미래의 교사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없고 출판이나 문학 창작의 시장도 날이 갈수록 좁아진다. 내 동생 또한 1970, 80년대에 시세 좋았던 이공계 전공이다.

정보의 생산 및 소비의 무게 중심이 인쇄 매체에서 영상, 디지털 매체로 이동한 요즘에 전통적인 국문과 취업 구조에 학과 커리큘럼을 맞추고는 취업난을 걱정하는 태도가 문제가 아닐까?

국문과 학생은 이제 단순 문학이 아니라 게임, 인터넷 사이트, 애니메이션, 상품 등 새로운 분야의 스토리텔링 작업이나 인터넷에서의 언어 현상 연구 및 글쓰기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새로운 매체에 기존의 학문을 융합시키는 ‘첨단 창조산업’을 개발할 시점이다.

대기업이 올해 하반기 공채에서 채용을 9.8% 줄인다고 한다. 하반기 업종별 채용 인원은 전기전자 업종이 4798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기계 철강 조선 중공업(1977명), 금융(1898명), 자동차(1843명), 건설(1723명), 석유화학(1376명)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채용 감소 폭은 전기전자와 정보통신 쪽이 가장 크다. 중공업, 자동차, 건설부문의 감소도 컸다. 반면 물류 운수와 금융 업종은 늘어났다고 한다.

산학 융합 ‘첨단 창조산업’ 필요

한 시기의 통계로 판단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산업의 중심축이 건설이나 제조업 중심에서 전자와 정보 쪽으로 움직여 왔다. 정부는 최근 새 성장동력 산업으로 디자인, 패션, e러닝 등 지식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사람 중심의 서비스 산업 첨단화와 선진화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확대되지 않는 것은 선진국 진입에서 겪는 현상일 수 있다. 이를 억지로 피하려 하기보다는 기술혁신을 통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거나 첨단산업을 통해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이제 개학이다. 강의실에서 패기에 찬 제자들과 마주해야 할 시점이다. 내 동생의 착한 눈망울이 떠오른다. 10년 후 내 제자들이 실의에 찬 내 동생의 모습을 닮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이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하기 위해 우리 기성세대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최혜실 경희대 교수·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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