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휴가 후유증

  • 입력 2007년 9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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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휴가철이 끝난 요즘, 사무실마다 휴가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띈다. 휴가의 멋진 추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수면 부족과 생체리듬 변경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8월 말 한 구직사이트가 직장인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2.9%가 휴가 후유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휴가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방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라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

▷많은 이들이 휴가가 몰리는 여름철보다는 자신이 필요한 시기에 휴가를 갈 수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최신호는 언제든 원하는 만큼 휴가를 갈 수 있는 ‘개방휴가제(un-vacation policy)’가 그렇게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라고 보도했다. 1990년대 초 개방휴가제를 도입한 IBM의 경우 일과 휴가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면서 35만 명의 직원이 휴가 기간에도 긴장을 풀 수 없게 돼 업무 부담이 되레 늘었다는 것이다.

▷개방휴가제는 평일을 토, 일요일과 묶어서 자투리 휴가를 여러 번 쓰든, 한 번에 2주를 사용하든 상관없다. 내일 휴가 가겠다고 오늘 상사한테 얘기해도 눈총 받지 않는다. 심지어 회사에선 당신이 사용한 휴가 일수를 집계하지도 않는다. 이런 환상적인 제도가 왜 실패하는 것일까? 결론은 간단하다. 직원들이 일의 성과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 시험을 치르는 학생에게 일주일 방학을 준다고 해서 즐겁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문화를 관찰해 ‘컬처 코드’란 책을 낸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클로테르 라파유는 미국인에게 직업은 ‘정체성’이라고 분석했다. 할 일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 존재도 아니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미국 억만장자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고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거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에도 일거리를 찾는 현상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직장 문화라면 우리도 미국인 못지않다. 휴가 후유증이 약간 있긴 해도 ‘짧고 굵은’ 방식의 휴가가 우리한테 더 맞는 것 같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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