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감사원장은 지난달 31일 한 국제세미나에서 “미래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정부 기능은 과감히 축소 개편하는 등 중앙정부의 기능 재편과 구조조정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과잉 복지가 되지 않도록 복지 정책을 정교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언이 전해진 뒤 “역시 ‘전핏대(전 감사원장의 별명)’답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일하던 김대중 정부 시절 “대차대조표도 모르는 공기업 감사가 말이 되느냐”면서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질타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의 발언은 현재 상황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을 보여 준다. 나라살림 성적을 보여 주는 관리대상수지는 올해 13조6000억 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8년 만에 최대 적자폭이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사실상 임기 마지막인 올해까지 5년간의 관리대상수지 적자 규모는 35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국가채무는 현 정부 출범 전해인 2002년 말 133조6000억 원에서 작년 말 282조8000억 원으로 2배를 넘었다. 반면 지난해 국민이 낸 국세는 138조443억 원으로 전년보다 8.3% 늘었다.
일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라면 사표를 썼어도 몇 번은 써야 할 성적표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공공부문의 군살을 빼기는커녕 조직 비대화에 여념이 없다. 공무원은 급증하고 공기업 민영화는 사실상 중단된 반면 국가의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하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은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언론과 민간 경제전문가들은 그동안 계속 ‘큰 정부’의 위험성을 우려했지만 청와대는 ‘양극화 해소’와 ‘장기 경쟁력 확충’을 내세우며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저소득층의 사정은 더 나빠졌으며 국가 경쟁력이 좋아졌다는 징후도 없다. 현직 감사원장까지 공개적으로 걱정한 정부조직 확대와 재정 악화에 대해 정권 핵심부는 무엇이라고 설명할지 궁금하다.
고기정 경제부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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