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록]李통일의 속 보이는 외신 브리핑

  • 입력 2007년 9월 4일 03시 01분


“지난주 정례브리핑과 똑같은 내용을 왜 되풀이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인 외교통상부 청사 1층 제1브리핑 룸에서 예정에 없던 ‘이상한 브리핑’이 진행됐다. 이날 브리핑은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외신기자들에게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설명할 것이 있다는 이유에서 갑자기 마련됐다.

하지만 브리핑에 참석한 외신기자들은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의 정상회담 의제 포함 여부, 예상되는 정상회담의 성과 등을 묻는 질문에 이 장관은 “정해진 게 없어 말하기 어렵다”는 말만 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렇다면 이 장관은 바쁜 일정을 쪼개 왜 이런 알맹이 없는 브리핑을 했을까.

이날 브리핑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통일부는 정례 브리핑 때 사용하던 정부청사 본관 5층 제1브리핑 룸이 아닌 별관 1층 새 브리핑 룸을 썼다. 이 브리핑 룸은 정부의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취재통제안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기자들은 취재통제 조치에 반대하며 이곳의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통일부가 내외신을 나눠 외신만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한 것도 처음이다. 통일부 김남식 대변인은 “정상회담 진행 상황을 많이 아는 국내 언론과 달리 외신들은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브리핑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새 브리핑 룸 사용에 대해서도 “본관 5층은 기자휴게실 철거 공사 등으로 어수선해 외신들의 편의를 위해 그쪽으로 잡았을 뿐 다른 뜻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본관 5층에서 매주 열리는 통일부 정례 브리핑에는 내외신 기자들이 함께 참석한다. 철거 공사도 대부분 끝나 기존의 제1브리핑 룸 사용에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통일부가 이날 브리핑을 자처했고, 본관 5층으로 계획했던 브리핑 장소를 이날 오전 갑자기 별관 1층으로 바꾼 것을 보면 새 브리핑 룸을 꼭 써야만 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NLL은 영토가 아닌 안보 개념’ 발언 파문으로 궁지에 몰렸던 이 장관이 청와대의 보호막으로 넘긴 뒤 노무현 정부 언론정책의 상징물인 새 브리핑 룸 이용으로 화답하기 위해 내외신을 편 가르기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상록 정치부 myzod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