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상대를 초조하게 만든다. 강자를 만난 상대는 강자보다 앞서나가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강자보다 뒤지면 체념한다. 평소엔 침착하게 대응할 장면에서 무조건 강경하게 나가게 되는 것이다.
흑 57도 초조한 심리에서 서두른 수. ‘가’로 두고 백이 58로 보강할 때 ‘나’로 두어 백 두 점을 잡는 것이 두터웠다. 흑 67까지는 일사천리의 진행. 흑은 ‘어음’인 두터움 대신 ‘현찰’인 실리를 택한 셈이다.
백은 68로 급소를 강타한다. 우변에 있는 백돌을 사석으로 버리면서 중앙을 두텁게 하겠다는 뜻이다. 이 9단이 예상했던 것은 참고도 흑 1로 붙이는 수. 흑 15까지의 변화는 흑과 백 모두 불만이 없다. 그러나 양 9단은 참고도처럼 두면 이리저리 당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 같은 판단은 더는 당할 수 없다는 분노로 돌변해 최강의 응수로 상대와 맞서게 했다.
그러나 실전은 양 9단에겐 재앙이었다. 흑 77까지 틀어막았으나 백 78의 단수가 뼈아프다. 자, 이제 패를 해야 하는데 팻감이 있을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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