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한나라당 10년, 통합신당 1개월

  • 입력 2007년 9월 5일 20시 41분


올해로 한나라당이 창당한 지 10년이 된다. 한나라당은 민자당에서 이름을 바꾼 신한국당과 이기택 씨가 이끌던 민주당의 합당으로 1997년 11월 21일 출범했다. 두 번이나 정권을 놓치고, ‘부패정당’이란 오명을 자초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한국 정당사에서 같은 이름으로 이렇게 오래 존속한 정당은 극히 드물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김대중(DJ),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현 집권세력은 어떤가. 지난 10년간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분당, 탈당, 합당 같은 이합집산도 심했다. 통합신당은 이제 겨우 1개월 됐다. 그러다 보니 대선 일정에도 차질이 생겨 어제서야 예비 대선후보를 5명으로 줄였다. 대선후보를 확정하려면 아직도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

집권정당의 단명, 한나라당의 상대적 장수.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DJ의 역할 차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역 기반을 배경으로 막강한 당 장악력을 보이던 YS가 1998년 2월 대통령 퇴임과 함께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한나라당은 사실상 ‘지배자 없는’ 당이 됐다. 사령탑이 조순→이회창→서청원→최병렬→박근혜→강재섭으로 이어졌지만(이 씨는 두 번 대통령후보도 됐지만) 이들은 당의 지배자라기보다는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비슷한 존재였다. 당이 특정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한 셈이다.

당의 체질도 크게 바뀌었다. 정치자금법 제정 같은 외부 요인도 작용했지만 두 번의 집권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 내부 개혁에 눈을 뜬 결과다. 올해 경선은 아직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지만 당을 경쟁모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해변에 놀러 나온 것 같던’ 사람들이 서서히 당의 민주화, 선진화를 향해 진화(進化)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집권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DJ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02년 노 후보의 대통령 당선부터가 그렇다. 당시 호남에서 92.3%(1997년에는 92.9%)의 몰표를 얻었다. 이듬해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DJ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홀로서기를 시도했으나 3년 9개월 만에 주저앉고 말았다. CEO로 옹립된 노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한 데다 당이 두 사람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 좌초한 것이다.

통합신당은 탄생부터가 DJ의 뜻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선 예비후보들조차 그의 후견(後見)을 얻을 궁리에 바쁘다. 국민을 바라보며 정치를 해야 할 사람들이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으니 당은 10%대, 예비후보들은 낮은 한 자릿수의 국민 지지밖에 못 받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통합신당은 어차피 대선용이니 집권세력은 대선이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또다시 이합집산을 할 게 뻔하다. 아직 자신들의 몸 하나 의탁할, 제대로 된 집조차 갖지 못한 것이다. 민주니, 개혁이니 부르짖는 사람들의 현주소가 이렇다.

19세기 미국의 성직자 제임스 클라크는 정치인을 선거에만 몰두하는 정략가(politician)와 위민(爲民) 정치를 하는 정치가(statesman)로 분류했다. 통합신당 사람들은 어느 쪽인가. 아직도 ‘DJ 슬하’에서 미래형 정치가가 나올 수 있다고 보는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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