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보이는 손’에 휘둘린 정통부의 원칙

  • 입력 2007년 9월 10일 03시 06분


《경제 원리로 움직이는 시장(市場)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입니다.

얼마 전 정보통신부가 ‘시장 원리 존중’이라는 원칙을 깨고 통신기업에 “요금 인하를 검토하라”는 행정지도를 한 것은

불확실성을 키우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본보 7일자 A14면(일부 지역 A1면) 참조
정통부, 靑서 의견 내놓자마자 “휴대전화료 내려라” 압력

정통부의 일관된 통신정책 기조는 시장 친화적이었습니다. 올 6월 국회 상임위원회에 출석한 노준형 전 장관은 “직접 요금 인하의 폭이나 시기를 결정할 행정지도를 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죠.

그 대신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췄습니다. 통신시장에 신생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경쟁 참여자를 늘려 요금을 내리자는 것이었죠. 유영환 현 장관도 취임 직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통신규제 로드맵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은 ‘요금 인하를 검토하라’는 청와대의 한마디에 무너지고 맙니다. 정통부는 청와대의 의견을 수용해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통신복지를 위한 요금제 마련을 통신기업에 행정지도하면서, 슬그머니 휴대전화 소량 이용자에 대한 요금 인하 검토를 끼워 넣었습니다.

전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사실상의 요금 인하를 종용한 것입니다. “휴대전화 소량 이용자는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요금 인하 행정지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통부 당국자의 설명입니다.

그는 “소량 이용자를 사회적 약자로 볼 근거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볼 수 있다. 좀 그렇게 봐 달라”고 말하더군요. 시장경제 원리 중심으로 요금을 내리겠다던 정통부의 원칙이 몇 달 만에 방향을 튼 것입니다.

물론 요금을 내려 소비자의 혜택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경쟁이나 혁신에 따르지 않은 요금 인하는 결국 비용으로 전환돼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상식입니다. 정책의 취지로 내세우는 소비자 보호를 결국 달성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장도 잃고, 소비자의 혜택도 잃는’ 원칙 없는 정책의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이번 일로 자신의 영향력을 다시 확인한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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