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9·11 6주년… 증오에서 포용으로

  • 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2001년 9월 11일 아침 출근시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이자 유엔이 소재한 세계의 중심 도시 뉴욕이 침공당했다. 미국적인 부와 자유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WTC)는 납치된 여객기가 허리를 관통하면서 불길 속에 휩싸였다.

첫 번째 건물이 공격당한 이후에 두 번째 건물이 피습당하는 순간부터 붕괴에 이르는 현장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세계인은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국은 그야말로 신음조차 내기 어려운 초상집이 되어 버렸다(America Mourning).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하와이 진주만이 일본의 기습 폭격으로 침공당한 적은 있지만 건국 이후 미국 본토가 침공당하기는 9·11테러가 처음이다. 처음, 최초라는 상황은 언제나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쌍둥이 건물이 차례로 무너지고 미국적 힘의 상징인 수도 워싱턴의 펜타곤이 화염에 휩싸인 전무후무한 상황이 벌어졌다.

20세기 말 동서냉전 시대가 종식되고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시장경제로 편입되는 세기적 변화의 과정에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돌이켜 보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적 자유를 찾아 유럽에서 넘어 온 필그림(Pilgrim Fathers)은 마침내 1776년 독립을 선언하면서 지난 4세기 동안 오늘의 초석을 다져 왔다.

미국은 지금 인권, 시장경제, 법의 지배를 무기로 전 세계를 호령한다. 하지만 그들만에 의해 설정된 원칙과 기준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많은 저항을 자초했다.

인권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도 따지고 보면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을 수없이 살육한 후에 겨우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을 설정해 생존을 보전해 줬다. 유색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자행하면서 인권을 내세운 세계 경영이 정당한지도 의문이다. 미국이 중국 내 소수민족의 인권을 주장할 때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너희나 잘해라’라고 힐난하지 않는가.

하지만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인간을 공포와 살상의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전쟁과 테러는 억제해야 한다. 특히 공격적 전쟁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우리 헌법도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미국이 베트남에 이어 이라크에서 비난받는 이유도 공격적 전쟁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러는 그 자체가 불법적이고 초법적이다. 빈 라덴으로 상징되는 알 카에다 집단의 테러는 전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테러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유일한 대응 방안일 수 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하는 테러는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선량하고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한 테러는 그들의 이념과 주장이 아무리 정당해도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도 이스라엘의 침공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자폭 테러,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테러, 러시아를 향한 체첸 반군의 테러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우리 국민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억류되고 살상됐다.

이제 테러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민족 종교 국가를 초월하여 인간 존엄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좀 더 충실한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인류를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묘약을 찾기 이전에 상대방을 악의 축(axis of evil)이 아니라 선(善)한 상호 존중의 대상으로 포용할 때 진정한 세계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