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북핵 문제를 10월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로 삼는 데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미 6자회담에서 풀려 가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북핵을 말하라는 건 가서 싸움하라는 얘기”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으로 회담을 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회담에서 북핵을 거론하라는 국민의 주문은 ‘싸움하라’는 게 아니다. 우리의 견해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비핵화를 위해 되돌릴 수 없는 계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다른 자리도 아닌 정상회담 석상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면 북을 핵보유국으로 용인한 것처럼 비칠 것이고,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들도 우리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장관급회담에서도 북핵 문제를 제기했다. 북측 당국자들은 그때마다 “권한 밖”이라며 빠져나갔다. 이제 그 권한을 가진 김 위원장과 만나는데, 정작 핵은 논의 안 한다면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미국 정부는 “이번 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이라는 말로 기대감을 표명한 상태다.
“핵보다 평화협정이 핵심 의제”라는 대통령의 말도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평화체제 논의는 북한이 기존 핵무기까지 완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 평화협정 당사국인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7일 “(한국전 종전은) 김 위원장이 검증 가능하게 핵 프로그램과 무기를 제거할 때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평화는 선언이나 협정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남북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했지만 북은 핵실험까지 했다. 2000년 정상회담에서도 6·15 공동선언이 나왔지만 2년 후 서해 교전이 발생해 꽃다운 우리 장병들만 희생당했다.
평화협정은 주한미군 철수나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같이 우리의 안보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꿀 군사적인 문제들과도 직결돼 있다. 평화를 보장할 구체적 조치 없이 조급하게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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