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거짓 브리핑에 국민은 얼마나 더 속아야 하나

  • 입력 2007년 9월 12일 22시 55분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신정아 씨 관련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언론을 농락하고 국민을 속였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인 청와대에서, 그것도 브리핑을 무기로 ‘대(對)국민 사기극’을 벌인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과 국민을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여겼기에 그랬을까.

두 사람 관련 의혹이 지난달 처음 제기됐을 때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신 씨와 개인적 친분은 없다”는 변 씨의 말을 전하면서 언론 보도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 대변인은 그 후에도 변 씨를 감싸면서 “근거 없는 의혹만 부풀리고 진실을 가리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언론을 맹비난했다. 그는 두 사람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가 검찰 수사로 드러나 변 씨가 전격 경질되자 “진실을 전달해 드리지 못한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언론은 그의 브리핑을 받아 적어 본의 아니게 독자에게 거짓말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1억 원의 뇌물을 주고받은 건설업자와 국세청 간부 사이에서 ‘소개자’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청와대는 진실 감추기에 급급했다. 청와대는 국세청 간부가 구속된 다음 날 정 씨의 사표를 수리한 데 대해 ‘우연의 일치’라고 했다가 “검찰에 확인해 본 결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 예정대로 수리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가 앞장서니 정부 부처는 흉내 내기에 바쁘다. 당국자가 짤막한 보도 자료를 배포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만 반복하는 브리핑이 많고, 자료만 읽고 끝내는 ‘낭독회 브리핑’도 있다. 장차관들이 아예 브리핑을 안 하는 부처도 있다. 이들 모두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이런데도 취재 봉쇄조치는 강화되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제 외교부 청사의 브리핑룸 신축 공사에 착수했다. 취재 봉쇄의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방문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취재 절차가 교도소 면회 절차 같다”고 탄식했다. 이것이 노 정권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언론 짓밟기, 국민 우롱하기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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