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희망찬 미래를 도모할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한국 대통령 선거는 감동은커녕 걱정만 안겨 주고 있다.
집권세력 쪽은 지리멸렬하다 보니 맞수끼리 경쟁을 통한 상승 작용은 아예 기대 밖이다. 이 후보가 50%의 지지율로 독주하고 있어 한나라당은 즐거울지 모른다. 국민은 솔직히 좌불안석이다. 이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언제 실체적 진실로 드러날지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저 치명적인 사태만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형편이다. 그러면서 이 모든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덮어 버릴 수 있을 만큼 그가 혁혁한 업적을 남기기를 고대한다.
이 둘은 맞물려 있다. 이 후보 본인의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은 불가능하다. 이 후보는 국민과 기업에 자율을 마음껏 부여함으로써 고도성장을 이룩하겠다고 한다. 그가 도덕적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한 경제 부흥은 꿈같은 이야기다. 돈은 기업인 혼자서 버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합심해서 일을 해야 한다. 때로는 그들의 땀과 눈물을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믿음을 못 얻는다면 이런 희망은 아예 접어야 한다.
석연찮은 주변 ‘읍참마속’해야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본인의 재산 축적 과정을 둘러싼 의혹을 정면 돌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주변 관리를 더욱 엄정하게 해야 한다. 이 후보 본인에 대한 아쉬움이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읍참마속은 필수적이다. 한나라당에는 냄새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후보 본인도 이야기했듯이 지금 그의 캠프 주변에는 자리 욕심에 눈먼 인사들이 꼬이고 있다. 이런 군상을 철저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권은 출발선상서부터 기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이 후보는 업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는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실용적인 중도 노선’을 걷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의 주변 사람들은 과거 노무현, 김대중 정권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정책을 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심지어 시원한 ‘복수’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좌우 정권의 급격한 시계추 이동은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때에도 그를 ‘끝까지’ 지지하는 국민이 20% 가까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조직력이나 응집력은 그 어느 집단도 흉내 낼 수가 없다. 부당하게, 섣불리 이들을 억누르거나 자극하면 심각한 역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차기 정권은 이념의 지도상으로 볼 때 중간 지점으로 연착륙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중도 노선이라는 것이 말보다 쉽지 않다. 정책 노선이 아리송하면 아무것도 안 되기 때문이다. 대북정책도 그렇다. 이 후보는 ‘이번 선거는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대결’이라고 말함으로써 그가 내건 실용적인 중도 노선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아리송한 중도노선 의문 증폭
이럴수록 이 후보는 좀 더 치밀하고 세련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이 후보는 성장과 성과를 골고루 나누겠다고 약속한다. 유감이지만, 그가 제시한 ‘2008년 신(新)발전체제’로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하다. 이 후보는 자신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적임자임을 알리는 홍보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홍보할 정책의 알맹이를 채우는 일이다.
이 후보가 이른 새벽에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과거 들판에서 농부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선거운동 하던 정치인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래저래 걱정이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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