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혼란을 기회로 삼아 학교를 옮기지 않는 조건으로 재직하는 대학에 금품을 요구한 교수도 있었다 하니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대학 간의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엄연한 교육기관인 로스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아카데미 정신의 실종을 보여 주는 듯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혼란은 교수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마다 새 건물을 마련하느라고 상당한 무리를 했다. 저마다 법률 도서관 장서를 확충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서적 수입상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간에 외국 대학과 교류협정을 체결하겠다고 나서는 촌극을 연출하는 것도 인가 심사에서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함이다. 몇몇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대학의 재정은 빤하기 때문에 로스쿨 유치에 사활을 거는 대학에선 다른 학과가 피해를 본다.
대학들 교수 확보-건물 신축 경쟁
이 같은 ‘로스쿨 대란(大亂)’은 당초부터 예상한 일이다. 준비가 된 학교를 연차적으로 몇 개씩 로스쿨로 인가하는 방식을 택했더라면 이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불과 몇 달 동안에 신청을 받아 심사를 하고, 일시에 인가를 내주겠다고 만용(蠻勇)을 부려서 혼란을 초래했다. 로스쿨 정원은 법조인 인력 수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에 대한 합의도 없이 덥석 법률부터 통과시켜 문제를 키운 면도 있다.
교육부는 1개 로스쿨의 정원을 학년당 50∼150명으로 정해 가급적 많은 로스쿨을 인가할 생각인 모양이다. 정원 50명짜리 ‘미니 로스쿨’을 양산할 것이라는 소문마저 있다. 중소 규모 로스쿨 양산은 로스쿨 도입의 원래 취지에 어긋난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고도의 전문 법률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한 학년이 최소한 200명은 돼야 한다. 평범한 민형사 사건을 다루는 보통 변호사를 양성할 로스쿨의 경우도 한 학년이 100명은 돼야 한다. 그래야만 전문대학원으로서 교육을 할 만한 기반을 갖출 수 있다.
교육부가 잠정적으로 정해 놓은 로스쿨 인가 심사기준은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하는 정량(定量) 기준이다. 교수의 논문은 1인당 몇 편이 돼야 하고 도서관 장서는 몇 권이 돼야 한다는 식이다. 한 대학이 누려 온 명성과 졸업생의 사회적 기여도 같은, 정말로 더 중요한 요소가 심사에 고려할 대상이 아닌 것은 큰 문제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로스쿨을 인가하는 경우에는 해당 지역의 인구와 경제 규모, 주요 법원의 소재 여부 같은 요소도 감안해야 한다. 기준에는 비현실적 부분이 많은데 교수와 학생의 비율을 1 대 12 이하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최고 명문인 예일대 로스쿨은 전체 학생 600여 명에 전임교수 약 70명을 두어 교수 대 학생 비율이 1 대 8이다. 예일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명문 반열에 드는 버지니아대 로스쿨과 조지타운대 로스쿨은 총학생이 각각 1200명과 1600명 수준이며 전임교수는 각각 80명과 120명 정도로, 교수 대 학생 비율은 1 대 15이다. 중위권 로스쿨은 대체로 1 대 20을 유지한다. 미국의 로스쿨은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해서 이 정도 교수를 확보했다. 우리나라 로스쿨 교수 확충 기준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학교 명성-사회 기여도 반영해야
역사와 전통이 있고 명성이 있는 대학이 좋은 대학인 것은 건물과 교수 수가 대학의 전부가 아님을 웅변으로 말해 준다. 로스쿨 졸업생은 변호사 시험만 합격하면 사법연수원을 거치지 않고 곧장 변호사가 되기 때문에 교육기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좋은 로스쿨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정량적으로 정해 놓은 인가 기준부터 손봐야 한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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