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12월 19일은 역시 이명박을 위한(for the MB) 선거일일까. 여론조사 전문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 것 같았다. ‘이명박의, 이명박에 의한 선거’가 이명박 승리의 가장 큰 적(敵)이 될지 모른다는 게 그의 부답(不答)에 담긴 암시였다.
이명박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의 ‘권력’을 보면 더욱 실감나는 암시다. 한나라당을 거머쥔 이 후보는 당내에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의원들을 동원해 대운하 전도사 육성계획을 짜고 있다. 추석연휴 직전인 21일쯤엔 ‘일류국가 비전위원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대운하 홍보전도 벌일 태세다. 후보의 핵심 공약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무슨 권력이냐고?
이회창 후보 시절, 한나라당 사람들은 ‘병역(兵役)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괜히 불편해하고 또 불안해했다. 어떤 중진은 무심코 ‘병역’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다 스스로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무슨 병역기피 얘기도 아니었다. 후보와 의원들을 이어 준 건 권력이었을 뿐, 동지애나 국정을 향한 열정이 아니었다. 최구식 의원은 이회창 후보가 결코 질 수 없는 ‘불패(不敗)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패장(敗將)이 되고 만 원균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았다. 한나라군(軍)의 대부분은 전투보다는 장수 주위를 맴돌며 전리품에만 군침 흘리던 ‘해바라기성 오합지졸’일 뿐이었다. 그게 한나라당의 오랜 생리이긴 하지만….
‘21세기의 경부고속도로’라는 대운하 공약을 이회창의 어두운 유산(遺産)에 대입하는 게 좀 심한 오버랩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대운하 공약을 대하는 한나라당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그때 일이 생각난다. 마치 비판을 허용치 않는 ‘금기(禁忌)의 성역’ 쯤 되는 것 같다. 성배(聖杯)라도 되는 것 같다. 대운하 공약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곧 이 후보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이 후보 측근 중에서도 ‘대운하 팀’이 성골(聖骨)이라니, 대운하가 곧 권력 아니고 뭔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시 한나라당의 ‘생리’가 농밀해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제 대선이 100일도 채 안 남았고, 이회창 후보 때와 달리 아직도 후보 지지율이 50%를 넘는데…’라며 달력의 날짜만 하루하루 지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운하 공약? ‘쟁점은 되겠지만 어차피 대선이라는 게 공약 보고 찍는 것은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며 몸을 젖히고 있을 것이다. 과연 이명박의 승리는 오직 시간과의 싸움만 남았을 뿐일까.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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