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용]교육부 ‘철학의 빈곤’

  • 입력 2007년 9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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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동아는 기술평가에서는 뒤졌지만 가격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역전했고, 가격평가는 조달청에서 제시한 최저가격입찰제로 결정되므로 덤핑이 아니다.”

본보가 2008∼2012년 국정교과서 발행 업체 선정 과정의 문제점을 보도하자 교육인적자원부는 “적법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업체를 선정했기 때문에 적법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선 교육행정가와 교사, 학부모들은 선정 과정보다도 교육부가 ‘최저 가격’이란 말을 강조한 것에 분노하는 반응을 보였다.

“교과서는 공교육의 얼굴인데 교육부가 경제부처럼 질보다 가격의 논리만 내세우느냐”(서울시교육청 A 장학관),

“교육부가 아이들의 미래보다는 예산 절감에만 신경을 쓰느냐.”(전북 군산의 B 교사)

교육부와 조달청은 최저가 입찰을 통해 377억 원의 예산을 절감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해당 업체는 4과목을 발행하면 5년 동안 최소한 200억 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고 한다. 이윤 추구가 최우선 목표인 기업이 거액의 손해를 감수하고 교과서를 만들 리가 있겠는가.

대부분의 업체들은 교과서는 싼값으로 사업을 수주하고, 참고서와 문제집을 비싸게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기기 때문에 ‘출혈 경쟁’을 한다. 학부모들은 업체가 그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비싸게 책정한 참고서를 사야 하기 때문에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학부모가 보게 되는 것이다.

미국 스콜라스틱사의 ‘Literacy Place’, 맥그로힐사의 ‘Treasures’ 같은 교과서는 내용은 물론이고 디자인이 좋고 표지가 튼튼해 장서로 꽂아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여서 부러울 때가 많다. 미국 학교에서 선배들의 책을 후배들이 몇 년씩 대물림하며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부도 질 높은 교과서를 보급하기 위해 그동안 업체 선정에서 가격평가를 배제했고, 교과별 전문 출판업체 육성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이번에 이런 원칙을 접었다.

교육부는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방어할 규정을 뒀지만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교육부 주장이 형식상으로 맞는다고 해도 컴퓨터 조달하듯 교과서에 최저가를 적용한 것은 ‘교육철학의 빈곤’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김기용 교육생활부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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