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덕 정권’의 벗겨지는 가면들

  • 입력 2007년 9월 20일 23시 13분


노무현 정권은 “참여정부에는 게이트가 없다”며 과거 정권과 도덕성에서 뚜렷한 차별이 있다고 내세웠다. 화려한 언설과 제스처에 깜빡 넘어가 ‘무능한 아마추어 정권이긴 하지만 도덕성에서는 그래도 과거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도 많았다. 그러나 임기를 5개월여 남겨 둔 현 시점에서 보면 과거 정권보다 나은 게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 정권은 “참여정부의 권력 운용 시스템이나 친인척 측근 관리 시스템으로 보면 악성 곰팡이가 서식할 구조가 아니다”고 자만에 넘쳤다. 그런데 정작 대형 측근 비리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는데도 청와대는 독선과 동류의식에 빠져 귀를 막고 있었다.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도 노무현 대통령은 역성 들기에 앞장섰다.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신정아 씨 의혹이 제기되자 천호선 대변인은 변 씨의 거짓말을 검증 없이 전하며 큰소리쳤다. 청와대가 자랑하던 측근 관리 시스템은 복구 불능의 먹통이었다.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은 어제 부산지법에서 김상진 씨 건설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무마해 주고 2000만 원을 챙긴 혐의로 영장실질 심사를 받았다. 영장이 기각되긴 했지만 불구속 수사하라는 취지일 뿐이다. 정 씨는 비리를 저지르고서도 본보를 포함해 3개 신문사를 고소하며 발뺌을 했다. 정 비서관을 뛰어넘는 더 큰 권력이 관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지금까지의 비리는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 등 핵심 요직을 지낸 변양균 씨는 특별교부금 예산을 쌈짓돈처럼 주물렀다.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 신정아 씨가 근무하는 미술관의 전시회에 후원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국가 예산의 사용(私用)과 권력의 남용, 그리고 부적절한 남녀관계가 뒤섞인 사건은 역대 정권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난잡하다.

이 정부는 초기에 공무원들에게 회식 자리에서 양주도 못 마시게 하는 결벽증을 과시했다. 그래 놓고 변 실장은 청와대 코앞에서 한 달 숙박비가 200만 원을 넘는 호텔에 묵으며 출퇴근했다. 자칭 ‘도덕 정권’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맨얼굴은 과거 부패한 정권들과 다를 바 없는 ‘도긴 개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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