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 대신 비만 걱정하는 명절
내 관찰로는 슬픔의 상당량이 분노로 바뀐 것 같다. 권력 가진 자, 돈 가진 자, 거기 빌붙는 자, 눈앞의 구체적 대상이 아닌 ‘거기’를 향해 분노하고 공격하는 중에 슬픔이 은연중 조절될 수 있다는 것을 도시인은 재빨리 간파한 것 같다. 땀 많이 흘리는 날 소변량이 줄어드는 현상과 비슷한 생리랄까. 죽음이나 이별 앞에 울지 않는다는 건 생에 달관하거나 만족해서라기보다 사회가 개개인의 비애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 까닭일 것이다.
추석은 농경사회의 명절이다. 벼가 익고 실과가 익어 한동안 배곯을 염려가 없는 데다 달까지 휘영청 밝다. 농사지은 사람을 치하하고 햇볕과 비를 준 천지신명께 감사하고 죽은 조상께 먼저 맛보시라고 햇곡과 햇과일을 차려 올리는 날이다. 하룻밤, 이틀 밤, 추석을 손꼽아 기다린 건 평소에는 햇송편, 햇과일은커녕 밥조차 배불리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밥에 고깃국! 김일성이 북한 주민에게 늘 약속했다는 바로 그것, 그것이 희망의 절대치일 때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 간단하고 명료했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族)’에 보이듯 온갖 음식 이름과 모여든 일가친척의 촌수를 호명하는 것만으로 정답고 흥성하고 풍요롭다 못해 감격적이었다.
이젠 배고파서 추석을 기다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평소 배고팠던 사람이라면 추석이 되레 괴로울 수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생산이 아니라 서비스업 내지 제조업에 참여한다. 볍씨를 언제 뿌리고 나락이 언제 익는지 별 관심도 지식도 없다. 누렇게 익은 들판? 휘영청 밝은 달? 이밥에 고깃국? 다 심상할 뿐이다.
그런데도 추석은 여전히 우리의 최고 명절이다. 흩어진 형제자매가 모여 차례상 앞에서 함께 머리를 조아린다. 욕망과 갈등에 시달리며 제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던 우리, 복잡하게 뒤엉킨 회로를 내장한 머리통, 이미 희끗희끗해진 머리칼과 나풀나풀 어린 머리칼이 뒤섞여 얼굴도 모르는 조상에게 절한다. 세상의 얼개가 변했으니 가족의 개념도 당연히 바뀌었다. 현대 가족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굴레이고 임무일 뿐이라고?
변치않는 情 찾아 오늘도 떠난다
올 추석 어머니(시부모와 처부모까지 확대하면 더욱 좋다)를 만나거든 무조건 힘껏 껴안자. 나의 희로애락의 원천이 어디인지, 가장 깊은 위안은 어디서부터 오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린 열 시간을 기꺼이 차를 몬다. 분노로 슬픔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악착같이 귀향한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 사외(社外)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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