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을 세우는 음악이 들렸다. 4인조 밴드였다. 퍼스트 기타는 어린아이나 쓸 법한 작은 기타에 서툰 솜씨로 얼기설기 전기선을 앰프에 연결한 것이다. 게다가 너무 낡았고 곡이 끝날 때마다 음을 다시 조율해야 했다.
그러나 묘하게 콘트라베이스, 드럼, 세컨드 기타 소리와 잘 어울렸다. 음악은 흥겨웠다. 약간 펑크적인 사운드인데 연주자들의 나이가 지긋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음악에서 사람이 자유로웠다.
악기에 연연하지 않을뿐더러 애초 음악을 악보 같은 것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 같았다. 눈빛에서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람 있고 음악 있지 음악 있고 사람 있지 않다는 펑크 정신이 저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많다. 클래식부터 대중음악까지, 서양 악기에서 동양 악기까지, 기악에서 성악까지 갖가지 음악이 들린다.
연주 솜씨는 수준급이지만 레퍼토리가 진부하기 짝이 없다. 콩코르드 지하철 통로를 지날 때마다 매번 아이다의 개선행진곡을 들어야 하는 기분을 생각해 보라.
파리 지하철 연주자는 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에서는 나름대로 음악을 다양화하기 위해 애쓴다. 최근에는 중국의 얼후(二胡) 연주자도 등장했고 페루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관리되는 음악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력서를 제출하고, 소환장을 받아 출두하고, 테스트를 받아 합격 여부가 가려지는 방식으로는 노팅힐의 창의적인 연주자들이 지하철에 설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박물관은 무료다. 런던 대영박물관도, 테이트모던도, 내셔널갤러리도, 자연사박물관도 무료다. 런던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호텔 숙박료와 식비가 모두 세계 최고다. 호텔 숙박료나 외식비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박물관이 공짜라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금전적 부담 이전에 심리적 부담을 덜어 준다.
영국의 박물관이 무료가 된 것은 2001년 12월부터다. 이후 박물관 관람객이 두 배 이상 늘었다. 관광객이 늘면 호텔과 식당도 붐비고 호텔이나 식당이 잘되면 시와 나라가 거두는 세금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파리의 박물관은 유료다. 런던이 박물관을 무료로 운영해 잘되는 것을 본 프랑스도 박물관 무료화 추진에 나섰다. 그러나 박물관 측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유로화도 파운드화처럼 강세여서 파리의 호텔 숙박료와 식비가 런던 다음으로 높다. 파리 관광도 대체로 박물관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박물관이 공짜라면 더 많은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텐데 무료화하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런던 템스 강가의 회전관람차 ‘런던 아이’는 사람들로 붐빈다. 파리 같으면 에펠탑이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지만 런던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그래서 ‘런던 아이’는 불과 수년 만에 런던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런던 관광객은 박물관 관람에 써야 하는 돈 만큼을 ‘런던 아이’에서 써 버리니까 박물관 무료화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인 셈이다.
파리도 관광객이 많지만 런던처럼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면 걷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창의적 문화가 자랄 수 있는 풍토, 멀리 내다보는 상인(商人)적 감각, 이것이 오늘날의 런던을 만든 비결이 아닐까.
송평인 파리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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