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희]마시멜로 이야기 2

  • 입력 2007년 10월 1일 03시 00분


중학생 조카가 숙제라면서 ‘마시멜로를 아직 먹지 마세요’라는 책을 읽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작년인가 대리번역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책이다. 잠깐 책을 구경하는데 앞날개에 적힌 내용이 호기심을 끌었다. “아서는 뉴욕타임스 퍼즐을 30분 만에 풀고, 남미의 경제를 분석하고 계산기보다 더 빠르게 암산을 할 줄 안다. 그런데 그는 자가용 기사이다. 조너선은 아서만큼 머리 좋고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그는 억만장자이고 아서가 운전하는 리무진 뒷좌석에 앉아 있다. 한 사람은 운전석, 또 한 사람은 뒷좌석,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것은 무엇일까?”

리무진의 앞에 앉으면 삶의 실패이고 뒤에 앉으면 성공? 단순논리가 너무 황당하여 책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1960년대에 스탠퍼드대의 월터 미셸 박사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네 살짜리 아이들을 한 명씩 방에 불러 들여 달콤한 마시멜로 과자를 보여 주고 자신이 잠깐 나가 있는 동안 그것을 먹지 않고 기다리면 두 개를 주겠다고 했다.

‘성공’이 행복의 잣대일까

어린이들은 그가 방을 나가자마자 금방 마시멜로를 집어먹는가 하면 침만 삼키며 참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14년 후에 미셸 박사는 이 아이들을 다시 추적, 관찰했다. 결과는 마시멜로를 금방 먹어치운 아이보다 참은 아이들이 대학 입학 성적과 학업 성취도가 훨씬 더 높았고, 자신감과 활동성이 뛰어났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자기충동 조절과 만족감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인생의 성취도와 직결된다는 말이다.

결국 작가는 삶에 ‘실패’한 아서와 ‘성공’한 조너선의 차이는 바로 마시멜로에 대한 태도라고 말한다. 아서는 충동을 절제하지 못해 금방 먹어 버리는 유형이고 조너선은 나중에 더 큰 보상을 받기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할 줄 아는 데서 그의 성공이 비롯됐다는 내용이다.

운전석에 앉은 아서와 뒷좌석의 조너선. 여기서 누가 더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사는지 그렇게 단순하고 물리적인 잣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아서는 억만장자는 아니라도 집에 가면 반겨 주는 따뜻한 가정이 있고,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보다 남을 위해 운전하는 직장을 더 선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억만장자 조너선은 리무진 뒷자리에 편하게 앉아 있지만 오늘 저녁 어떤 빌딩에 올라가서 떨어져 이 괴로운 삶을 마감하겠다고 생각하는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달라서, 대통령 한번 해 보겠다고 저렇게 줄줄이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데 전혀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 꼭 억만장자가 되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난 미셸 박사의 실험 결과와는 상관없이 네 살짜리 아이들이 먹고 싶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네 살 때 미셸 박사의 실험 대상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배가 고팠다고 해도 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렸을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신체장애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남들처럼 ‘주류’의 삶에 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절제와 노력으로 나를 단련해야 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난 이제껏 늘 작가가 권장하는 마시멜로를 아껴 놓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조금 더 좋은 자리, 조금 더 남이 인정해 주는 자리를 위해서 앞만 보고 정신없이 뛰며 마시멜로를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했다. 리무진 뒷자리에 앉지는 못해도 이렇게 ‘동아광장’에 글도 쓰고 똑똑한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니 말이다.

하루하루 작은 기쁨도 소중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먹고 싶은 마시멜로를 금방 먹는, 그런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분명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마시멜로’가 무엇인가이다. 명예, 돈, 직위-언젠가 인생에서 꼭 먹고 싶은 마시멜로이지만, 그것을 위해 희생해서 안 될 게 있다. 하루하루의 작은 기쁨들-저 파란 하늘, 맑은 햇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따뜻한 만남-은 아껴 두지 말고 꼭 오늘 즐겨야 하는 마시멜로이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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