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각국도 정교분리 원칙을 채택하지만 기독교 문화가 국가와 국민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형식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지만 실질은 기독교 국가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 대통령은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다. 아랍 국가의 이슬람 신앙은 거의 절대적이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종교적 박해로 이차돈이나 김대건 같은 종교적 순교자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종교적 다원성이 잘 구현되고 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유교가 비슷한 교세를 확보하면서 종교적 갈등이 없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런데 최근에 종교재단이 설립한 사립학교의 강요된 종교교육에 대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종교교육은 인류의 역사와 지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기독교 문화의 이해가 없는 서양사가 있을 수 없고, 불교와 유교 문화의 이해가 없는 동양사가 있을 수 없다.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국공립학교에서 특정 종교만을 위한 종교교육은 헌법 위반이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일 뿐 아니라 대부분이 국공립이다. 따라서 특정 종교만을 위한 교육은 있을 수 없다.
반면에 종교재단이 설립한 사립대에서의 종교교육에 대한 해법은 간단하지 않다. 예컨대 기독교재단이 설립한 대학에서는 채플이 필수교과목이다. 수년 전 채플 과목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졸업이 거부된 학생이 법원에 제소한 바 있다. 대학은 3년간 6학기에 걸쳐서 채플 수강을 강요했고 내용도 당사자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예수 찬송과 기도를 포함했다.
대법원은 사립대 학생의 재학 관계는 사법상 계약이라는 이유로 학생의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은 학생이 입학하면서 학칙을 준수하기로 서약했다는 점에 중점을 뒀지만 대학입시에서 학생의 선택 폭이 제한되고 입학 과정에서 많은 국가적 개입이 있다는 점에 비춰 본다면 순수한 사법관계로 판시한 것은 비판의 소지가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의 채플 수업이 기독교 문화의 건전한 이해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선된 점은 다행스럽다. 대학의 종교교육은 종교재단의 건학이념을 반영하면서 학생의 문화적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정립해야 한다.
문제는 중고교다. 중고교 입시가 폐지된 뒤 학생 본인이나 학교 의사와는 무관하게 교육당국에서 일률적으로 학교를 배정한다. 특정 종교를 믿는 학생도 다른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에 입학해 종교교육을 강요받는다. 이를테면 기독교를 믿는 학생이 불교재단 학교에 입학해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관세음보살 합장을 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배정됐으므로 중고교 학생은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교육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즉 강제 배정된 중고교에서의 특정 종교교육은 헌법상 보장된 종교의 자유와 교육을 받을 권리(학습권)를 침해한다. 헌법학자의 일치된 견해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는데 대광고 사건에서 강의석 군이 외롭게 투쟁한 끝에 최근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해 만시지탄의 감이 든다.
다행히 교육당국은 중고교 입학 제도를 선지원 방식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중학교육은 초등교육과 마찬가지로 의무교육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 당국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는 미래 한국을 이끌 청소년이 좀 더 열린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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